안녕, J. 난 가연이야. 잘 지내지? 영 소식을 몰라서, 아니 사실은 알고 싶지 않아서 궁금함도 애써 모른 채 하고 살았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네 존재가 생각나면 죄책감과 미안함, 투사로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화가 나고 슬퍼져서 너를 내 인생에서 완전히 지워버렸어. 또 네 소식을 알 수 없도록 인스타를 차단했어.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생각이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잖아. 그렇지만 나는 지질한 사람이라서 카카오톡까지는 차단 못 하겠더라. 혹시라도 연락이 올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네가 아직 내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가끔 안부는 물어주겠지 하는 연락을 기대했던 것 같아. 우리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3년 가까이 나눠왔던 애정이 소멸되는 건 아니니까. 다 끝난 관계에서 무슨 관심을 바란건지, 나도 참.
여자친구가 생겼더라고. 차마 축하는 못 하겠다. 불쾌한 감정이 올라오는 게 더 커서. 미련이나 질투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더라. 소유욕에서 비롯된 거였어. 나와 가까웠던 네가 다른 사람과 있는 걸 보고는 익숙함이 깨졌었거든. 원래 내 자리였는데 하는 쓸모없는 다 지나가버린 후회와 같은 마음이지. 쓰고 나니깐 불쾌함은 가셨다. 조금은 후련해졌네. 그래도 축하는 안 할게. 하하.
어제 일하던 중에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한 아주머니가 부드러운 톤으로 사근사근 내 이름을 말씀하시는 거야. 잘 지냈지? 하시면서. 익숙한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네 어머니였어.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하셨을까, 불안한 마음을 안고 나가서 전화를 이어받았어. 너와 내가 헤어졌던 당시에 네가 썼던 쪽지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거를 내게 못 전해줬던 것 같다고 그 마음을 어머님이 대신 전해줘도 되겠냐고 물으셨어. 읽어주시기도 전인데 네 마음이 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어. 네가 나를 참 예뻐했대. 순수했던 내 모습이 좋았고, 고마웠다고.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보면서 썼다고. 건강하라고. 네가 많이 힘들 때 편지를 썼었던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속은 잘 모르겠지만 힘들어했을 거라고. 네가 남자애라서 많이 부족했을 거라고 나를 위로하셨어. 또 내가 선물로 드린 선크림을 보고 내 생각이 나셨대.
네가 그 쪽지를 어떤 감정을 가지고 썼을지 알 것 같아서 슬프고 가여웠어. 너는 우리가 헤어질 때 미안하다는 말보단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지만 내용을 듣고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더라. 미안해. 우리의 관계는 사랑도 있었지만 우정도 함께 있었잖아. 그런데 내가 그 우정마저도 한 순간에 의리 없이 끝내버렸다는 생각에 참 후회가 많이 됐어. 잘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참 많았는데. 미안해.
헤어지고 나서 나는 나를 되돌아봤어. 나는 사랑을 갈구하며 점점 지쳐갔었던 것 같아. 너는 나 외에도 신경 쓸 게 많은 사람인데도 자꾸 네게 더 많은 사랑을 요구했지. 구걸하는 사랑은 절대 충족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알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이었지. 내가 네게 사랑을 주면 좋다에서 끝났어야 했는데 내가 이만큼 주니까 너도 이만큼 줘야 해, 하고 사랑 가지고 장사를 했었어. 기대감이 너무 컸었지. 사랑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 불안했어. 네게 늘 매달리는 존재처럼 느껴졌었어. 내가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까, 불안해서 해결하려는 몸부림을 쳤던 거야. 우리가 헤어진 것은 내 문제였어. 나의 불안감 때문이지. 한동안은 너를 원망했는데 내 문제라는 걸 깨닫고는 그러길 멈췄어. 그리고 후련했어. 더 이상 사랑을 구걸하지 않아도 되어서 마음이 편안했거든. 이래서 홀로 있어도 온전한 사람이 연애를 잘한다는 말이 있나 봐.
J, 너는 참 대인배야. 헤어지고 나서도 어떻게 그렇게 예쁜 말을 가득 담아 응원과 사랑을 보내는지, 여전히 나는 네가 존경스러워. 너를 명사로 정의하자면 감사와 은혜라고 생각해. 감사할 줄 알고 늘 베풀고 살잖아. 네 덕분에 많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이 배웠고, 성장했어. 문득 너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장소에 가면 즐거운 기억이 떠올라서 웃었던 적이 많아. 여기저기서 영어가 들리면 괜히 반갑고, 녹차만 보면 선물로 주고 싶고. 하하. 우리의 헤어짐이 괴로웠지만 좋은 추억이 훨씬 더 많아서 결국엔 웃게 되더라고. 내게 눈부신 추억을 선물해 줘서 정말 고마워. 아파봤으니까 잘 알지? 건강이 최고라는 거. 항상 건강해. 네 모든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랄게.
어떤 식으로든 한 번은 내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나는 말보다는 글이 더 좋아서 이렇게 써서 보내.
2025.02.13. 목
가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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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때도 참 많이 울었고 다시 읽으면서도 눈물이 난다. 고마웠던 지난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