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며

창작이 계속되는 한, 나는 늙지 않으니까

by ㄱHMㅣ

나가며


농한기에 지인이 운영하는 돈까스 가게에 다니며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5년차 농부가 된 시기였다. 주 5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가게에 나가 돈까스를 포장했다. 배달 위주라 행여 실수할까 봐 다섯 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어, 몸도 마음도 고되고 힘들었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달마다 통장에 월급이 딱딱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었다. 일을 하고 와서 무언가를 창작할 시간도 충분했다. 농번기가 되어 다시 밭으로 복귀했지만, 땡볕 아래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자면, 문득문득 돈까스 가게가 생각났다. 아주 가끔, 농사를 그만두고 알바나 직장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내가 일하던 돈까스 가게를 인수하게 됐다. 어느 날 갑자기 맨땅에 헤딩하며 농사를 시작한 것처럼, 농사꾼에서 장사꾼으로 또 한 번 직업이 바뀌게 된 것이다. 당연히 내년에도 밭에서 농작물을 키우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이번 농한기에는 미술학원도 다니고, 온라인 강의도 시작해 볼 생각으로 부푼 마음을 안고 있었는데, 자서전 집필 중 벌어진 일이었다. 가게 인수는 2주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중이고, 아마도 이 책이 인쇄되어 세상에 나올 때쯤이면, 내 가게에서 돈까스를 포장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얼떨떨하다.

가게를 인수하라는 소리에, 처음엔 완강히 마음을 굳히며 결사반대했다. 자유롭게 농사지으며 살다가 가게에 하루 종일 묶여 있으라고? 그럼 나 글은 언제 써? 유튜브는? 미술학원은? 온라인 강의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생각은 곧 바뀌었다. 다음 날 예산 국화 축제에 갔다가 시니어 합창단을 보았는데, 노래하는 단원들의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우리 부모님도 이제는 고된 농사일을 접고, 취미를 즐기며 살게 해드리고 싶었다.

벌써 6년 가까이 농사를 지었지만, 매년 언니와 고민을 나눴다. 청년 농부 모임에서 부회장까지 맡아 일하던 언니는 말했다. 농사는 답이 없다고. 피땀 흘려 키운 농작물은 제값을 받지 못한 채 팔려나가고, 농민들의 돈은 유통업체와 인력에게 돌아가는 게 농업의 현실이라고. 더군다나 우리 부모님 나이면 농사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접는 게 맞단다. 듣고 보니 취미로 텃밭 관리하는 게 아닌 이상, 뼈를 갈아 넣으면서까지는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나마저도 농사짓다가 고장 난 관절들을 고치러 병원을 드나드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그래서 장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명의로 인수한다 해도, 당분간은 가족들이 도와줄 예정이었다. 그러다 장사가 잘되면 알바도 구하고,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하면 되겠지.

이제 소재 사냥을 나갈 시간이다. 너무 오랜 시간 집에만 머물렀다. 밖에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사건들이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핸드폰 한 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농사를 짓는 것보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에 조금씩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창작하는 사람에겐 모든 순간이 소재고, 값진 경험이 된다. 작가는 24시간 작가로 살아야 한다. 그 생각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매일 매일 시간을 쪼개 창작을 이어가야겠다. 창작이 계속되는 한, 나는 늙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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