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쓴다는 마음으로
Chapter 3.
오늘도 무언가를 창작 중입니다
기상 알람을 듣자마자 꺼버리고 다시 잠든 게 화근이었다. 수강 신청을 하기 위해 맞춰놓은 알람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부랴부랴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미 4명이 신청한 상태였다. 황급히 신청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했다. 그제야 강의 계획서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들을 거 신청부터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신청 전에 읽어는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계획서를 다운받았다.
강좌명 : 출판 편집자와 함께 글쓰기
학습 목표 : 서로의 독자가 되어주어 함께 글을 나누고 다듬습니다.
비대면 수업이라 좋아하던 게 무색하게도, 첫 줄부터 거대한 옹벽이 세워졌다. 고등학생 때도 감상평을 나눠야 한다는 이유로 문예부 동아리 가입을 포기했는데, 이놈의 소심한 성격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발목을 잡았다. 강의 계획서를 읽어보기도 전에 결론을 내렸다. 포기해야겠군.
미련을 버리려다가도,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강의 계획서에 눈길이 갔다. 에세이라는 미지의 영역이 궁금했다. 사실은 상업소설의 민낯을 마주했을 때부터 에세이에 관심이 생겼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결국 다시 수강 신청 폼에 접속했다. 16명 정원 중 11명이 차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수강 신청을 했다. 그 와중에 결제 시스템 오류로 카드 결제가 안 됐다. 입술이 바짝바짝 탔지만, 무통장 입금까지 하고 나니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안도한 것도 잠시, 진짜 시작이라는 사실이 살갗에 와닿자 설렘과 걱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하지만 이젠 되돌릴 수 없다.
첫 수업은 몇 시간도 채 남지 않았고, 너무 떨려서 저녁밥을 먹을 수조차 없었다. 내가 강의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나 스스로 참 특이한 성격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막상 첫 수업을 마치고 나니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았다. 일주일은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원고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글쓰기 카페를 통해 공개된 원고에 수강생들끼리 댓글을 달고 응원하다 보니 자연스레 내적 친밀감이 쌓였다. Zoom 화면을 통해 안면만 튼, 혹은 아예 얼굴을 모르는 수강생들의 활발한 교류 덕분에 매일이 즐거웠다. 수업 시간은 놓치기 싫을 정도로 알찼다.
스무 시간에 걸쳐 배운 것은 에세이의 법칙이었다. 혼자 에세이를 써보려고 검색해 봐도 배우지 못한 알짜배기 정보들이 매주 쏟아졌다. 그 법칙을 배우며 원고에 적용하고 나니, 시판 도서 속에도 한 원고마다 에세이의 원리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생 존재하는지도 모르던 세계의 문이 활짝 열린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부족한 에세이를 매주 읽어주는 독자가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함께 글을 쓰는 수강생들이 내 글을 읽어주고, 출판사에서 오랜 시간 몸 담근 편집자님 또한 세심한 피드백을 주셨다. 프로 작가가 된 것도 아닌데, 전문가와 많은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소중했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고되지만 즐거웠다. 그렇게 우리는 추운 계절에 만나 더워질 때까지 함께 글을 쓰고 나눴다.
강의가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점점 농사일이 바빠졌다. 퇴고도 못 한 글을 제출했을 땐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매주 받은 피드백을 마음에 새기며 매주 글을 다듬었다. 마감 시간은 모든 발명의 어머니라더니. 창작에도 적용되나 보다.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주일에 한 편씩 원고를 완성해 냈다. 편집자님은 말씀하셨다.
“이대로 반년만 글을 써도 책 한 권이 나올 분량이에요.”
그 말을 듣고 다짐했다. 이 강의가 마무리되어도, 나는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쓰겠다고. 그러나 마음과 달리 강의가 끝나자마자 글쓰기 동지가 사라지고, 글을 쓸 동기 역시 빠르게 휘발되었다. 습관을 들이기까지는 어려워도, 잃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매주 열정에 불을 지펴주던 건 나 자신이 아니라 내 글을 함께 읽어주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문득 어디선가 들은 문장이 떠올랐다.
독자는 작가 없이 살 수 있어도,
작가는 독자 없이 살 수 없다.
그렇게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에 다시 호미를 쥐었다. 농사일에 치이고, 동영상을 편집하고, 간간이 소설을 쓰던 6월의 어느 날. 수강생과 함께 쓴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내게로 왔다. 어린 시절, 에이포 용지에 써 내려간 글이 시화집으로 묶였을 때와 비슷하게 마음이 벅차올랐다. 가족들이 내 책을 읽어주는 모습에 잊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는걸.
그래서 8월 끝자락부터 10월 중순까지 진행되는 하반기 교육에 재수강하게 되었다. 이번엔 자신이 쓴 원고를 소장용 개인 책으로 출판할 수 있다고 했다. 8주 동안 원고를 쓰며 인생을 돌아보니, 짧은 인생이지만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가족과 친구, 첫 직장과 사업까지 쓸 이야기가 넘쳐났다. 상업성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나에겐 너무 의미 있는 기록들이었다.
에세이를 배운 2025년은 나의 인생에 또 하나의 길을 만들어준 해였다. 이제는 한 권의 책을 쓴다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에세이를 써보려 한다. 책을 출간해야 독자들을 만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과 카페에서 얼마든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화면 너머에서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을 떠올리며, 오늘도 한 줄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