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닿기를

시골의 작은 방 한구석이 누군가에게 교실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by ㄱHMㅣ

Chapter 3.

오늘도 무언가를 창작 중입니다


농사를 지으며 유튜브 채널을 관리하던 어느 여름, 서산시 가족센터에서 인생 첫 강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연락을 받자마자 소리쳤다.

“내가 강의를?”

강사 경력이 있기는커녕 누군가를 가르칠 만큼 대단한 무언가가 있지도 않았다. 지레 겁부터 먹고 거절하려고 했는데, 내가 그럴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담당자님의 연락이 폭풍처럼 날아왔다. 소그룹 진로 프로그램이라 큰 부담은 없을 거라고. 다문화 가정 중학생 서너 명을 데리고 멘토-멘티 방식으로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고 했다. 식음료도 제공해 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게다가 강사료는 무려 2시간에 10만 원! 한창 유튜브 수익이 저조할 때라, 빈곤한 통장 잔액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결국 강사료에 솔깃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PPT를 사용할 수 없다는 말에 부랴부랴 인쇄할 강의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만 한 그림 자료도 찾아 넣었고, 다양한 직업 소개 및 직업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정리해 미니 책처럼 만들었다. 강의가 준비가 얼추 마무리되자, 아이들과의 만남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농부와 유튜버, 여차하면 간호조무사라는 직업까지 여러 경험을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꿈을 정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정말 기쁘고 뿌듯할 것 같았다.

그러나 기대를 안고 나간 첫 강의는 뜻밖의 난관으로 가득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딱히 궁금한 것이 없었고, 다문화 가정 자녀라 아예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처음부터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번역기를 들고 강의를 진행했으나, 질의응답 시간까지 생각해서 준비한 강의 자료는 한 시간 만에 동이 나고 말았다. 남은 한 시간은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질문하며 시간을 채웠다.

“즐겨보는 유튜버 있어?”
“유튜브를 잘 안 봐요.”
“그럼 혹시 농사 체험해 본 적은 있을까?”
“아니요. 농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요?”

카페 안에는 나 말고도 요리사, 직장인,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 소그룹이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유튜브나 농사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나의 강의를 들으러 온 줄 알았는데, 그냥 센터에서 직업 교육을 들으러 가라고 해서 온 게 전부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장래 희망도 딱히 없다는 말에, 말 그대로 멘탈이 탈탈 털린 상태였다. 결국 중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나는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친구 관계 속 작은 고민 등을 들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짧은 시간에 마음을 열어준 것인지, 마지막에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자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자존감 또한 바닥을 쳤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실전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통장에 입금된 강사료를 보고도 마음이 무거워 핸드폰을 엎어놔 버렸다. ‘다신 강의 안 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거기서 포기하면 강의란 나에게 평생 실패의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강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한국 직업 능력 검정협회’였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시험에 합격하면 자격증이 배송되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효력이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리 생각하며 ‘유튜브 크리에이터’ ‘글쓰기 지도사’ 강의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 과목 더 들을 수 있어 고민하다가 ‘아동 공예 지도사’ 과정도 신청했다. 여전히 만들기를 좋아했기에, 취미로 만든 펠트나 클레이 작품을 꾸준히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쁜 시기였지만, 틈틈이 노트북 앞에 앉아 강의를 들었다. 사실 시험은 오픈북 테스트에 가까워서 강의 동영상만 틀어놓고도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지만, 강의를 하나도 흘려듣지 않았다. 진심으로 강사 일을 시작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강사님들은 수강생의 연령대와 특성에 맞춰 실전 팁을 쏟아내기도 했다. 2시간 수업 시간 배분법과 학습 자료 준비 등 필기할 부분이 많아 동영상을 멈춰놓고 쉴 새 없이 펜을 놀렸다. 눈앞에 아이들이 있다고 상상하며 강의를 진행해 보기도 했다. 인형이라도 앉혀놓고 해볼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하다가,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니터링도 할 겸 동영상을 촬영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미 5년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카메라 앞에 서봤으니, 어려운 것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요즘은 클래스 101 같은 플랫폼에 강의 콘텐츠를 판매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편집도 할 줄 아는데, 이참에 제대로 된 강의 영상을 만들어 볼까?

전부터 유튜브를 시청한 지인들은 나에게 강사 일을 추천했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강사 일을 하려면 운전이 필수였고, 뚝뚝 떨어진 시골 학교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강사료의 절반은 기름값으로 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 때문에 한 귀로 흘려들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비대면 강의라면 말이 달라지지 않는가? 거기다 강의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다면 한 교실에 국한된 아이들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다른 말로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소리기도 했다.

“나 이번 농번기에는 강의하러 다닐 거야!”

증명사진이 박힌 자격증 카드가 도착하던 날, 가족들에게 자랑처럼 전했다. 그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바로 강사로 뛸 순 없었지만,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 돈까스 가게에서 알바를 했다. 쓰고 있던 장편 소설을 마무리하면서도 틈틈이 강의 계획서도 준비했다. 온라인 강의를 만들려면 지금보다 더욱 시간을 쪼개서 노력해야 했다. 조급하기도 했으나 새로운 창작 거리가 생기니 첫 강의를 준비하던 때처럼 마음이 한없이 들떴다.

돌이켜보면, 첫 강의의 실패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만약 그때 내가 강의를 완벽하게 끝냈다면, 강의란 그저 재밌고 좋았던 경험에 그쳤을 것이다. 오프라인 강의의 어려움을 느껴보고, 나의 한계를 체감했기에 강사라는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후로 비대면 활동들이 일상에 자리 잡은 요즘. 시골의 작은 방 한구석이 누군가에게 교실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강의 준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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