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이어나가는 힘

상업성보다도 중요한 것은

by ㄱHMㅣ

Chapter 2.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여러분,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여기 왔죠? 그러면 여러분이 쓰고 싶은 거 쓰지 마세요.”


강의실에서 들은 첫 마디는 유독 차갑고 날카로웠다. 간호조무사 일을 잠시 쉬는 동안, 나는 꿈에 그리던 웹소설 강의를 듣게 되었다. 왕복 다섯 시간이라는 거리가 무색하게 들뜬 마음을 안고 천안까지 애써 찾아갔는데, 충격이었다. 다짜고짜 쓰고 싶은 걸 쓰지 말라니.


현직 작가인 강사님은 나를 포함한 작가 지망생에게 웹소설 시장의 차갑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웹소설에 교훈 넣지 마세요. 고구마 전개 다 빼세요.

문장은 짧고 간결하게, 초등학생도 읽고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쓰세요.

독자의 스크롤이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 그 작품은 망한 겁니다. 다 갈아엎으세요.


망치로 얻어맞은 머리통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왜 그래야 하지? 왜? 왜? 왜? 온갖 반박의 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 역시 웹소설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그 자리에 간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업성을 가지기 위해선 작가가 원하는 글이 아니라 독자가 원하는 글을 쓰는 게 맞다. 그게 잘 팔리는 웹소설의 법칙이었다.


수업을 거듭할수록 웹소설이 철저하게 상업소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웹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 유명 작품 한 편 읽어보지 않았던 나는, 그제야 웹소설과 순문학이 전혀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결국 준비하던 작품을 폐기하고 강사님이 알려주는 대로 독자들에게 ‘먹힐 만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놉시스 제출 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도 도무지 글이 써지질 않았다. 매번 골머리를 썩였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1화만 서른 번을 고쳤다. 억지로 5화까지 완성한 후 생각했다.


‘내가 즐겁게 쓰지 못하는 글을 어느 독자가 즐겁게 읽어줄 수 있을까?’


그렇게 글쓰기 슬럼프, 이른바 ‘글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완결하지 못한 작품을 내팽개쳤다. 글을 쓰는 목적이 즐거움에서 돈으로 바뀌니, 써야 한다는 강박감에 숨통이 조였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도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내 모습에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할 정도였다.


무기력한 시간이 이어졌다. 글도, 일도 멈춰 있던 그 시절. 세상마저 멈춰버렸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친 것이다. 사직서를 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젊고, 얼마든지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었는데 큰 오산이었다. 신종 전염병의 공포로 인해 의료계 쪽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설상가상 줄줄이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알바를 구하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무렵 가족들이 농업에 뛰어들었고, 농작물을 판매하기 위해서 판로를 뚫어야 했다. 그래서 무작정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에 큰 꿈은 없었지만, 코로나 시국에 영상이 갖는 힘은 대단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모두가 유튜브나 OTT를 통해 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글이 아닌 영상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채널을 개설하는 것부터, 영상 편집법. 구독자 모으는 법. 수익 창출 등등, 유튜브에 대한 모든 건 누군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배웠다. 당시에는 농사보다 양봉이 주된 콘텐츠였기에 채널명을 ‘꿀 빠는 가족’으로 선택했지만, 그해부터 점점 이상 기온이 기승을 부리다가 전국에 있는 벌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반대로 임대한 밭은 점점 늘어나서, 2년 만에 내 채널의 주된 콘텐츠는 양봉에서 밭농사로 바뀌게 되었다.


역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글도, 직장도, 사업도 뭐 하나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게 없었다. 20대 후반쯤에는 작가로 등단할 줄 알았는데, 소설 창작을 포기하고 동영상을 편집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 유튜브 운영도 마찬가지였다. 온 힘을 다해 만든 영상엔 별 반응이 없었고, 내가 봐도 별로라고 생각한 영상은 예상치 못한 조회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웹소설 강사님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쓰고 싶은 것보다, 독자가 읽고 싶은 게 뭘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글을 쓰세요.”


내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 것인가, 대중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 것인가. 어쩌면 이 질문은 창작자라면 죽을 때까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웹소설을 쓸 때는 몰랐던 그 말의 의미를, 유튜브를 운영하며 뒤늦게 깨달았다. 유튜버야말로 ‘대중들에게 먹힐만한’ 상업적인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직업이었다.


같은 영상을 보고 또 보고, 같은 소리를 백 번씩 들으며 편집하는 짓을 1년 반 정도 하다 보니,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학생 때도 시험 기간만 되면 그렇게 글이 잘 써지더니, 글은 이번에도 도피처 역할을 톡톡히 해내 주었다. 되찾은 글쓰기의 즐거움을 잃지 않기 위해 아무리 농사일이 고돼도 하루 끝에는 꼭 노트북 앞에 앉았다. 몸은 힘들어도 역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때가 가장 즐거웠다.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결국 주인공을 죽여버리며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이유는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셜록 홈즈가 아닌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일본의 만화가들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만화보다 머리 식힐 겸 그린 만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것에 엄청난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보는 만화 중에도 그런 이유로 연재 속도가 느려지거나, 결말을 망쳐버린 사례가 몇 있었다. 그런 걸 보며 생각했다. 창작에서 독자의 반응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상업성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가 스스로가 계속 이어나가는 힘이라고.


독자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엔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트렌드를 쫓아 유행하는 키워드를 이용한다 해도, 돌이켜 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독자를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뜻밖의 작품 하나가 나를 세 받아먹는 건물주로 만들어주겠지. 생각지도 못한 영상 하나가 알고리즘의 축복을 받아 조회수 천만 뷰를 찍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글을 쓴다. 독자가 원하는 걸 좇으면서도 그 속에서 내가 즐거울 수 있도록, 끝나지 않는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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