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누구의 마음속에나 여전히 살아있다
Chapter 2.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개미야, 오늘 미술학원 가는 날이지? 배고플 텐데 이거라도 먹고 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왕고쌤이 서랍을 열어 원장님이 채워놓은 간식거리를 한 움큼 꺼내주었다. 하루 종일 데스크에 앉아 백 명이 넘는 환자들을 상대하고, 퇴근 후 바로 미술학원으로 향하는 내가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22살, 나의 첫 직장은 피부과였다. 간호조무사 시험에서 합격하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진상 환자가 많을까 봐 걱정도 많았지만, 대부분 내가 먼저 친절하게 대하면 상대방에게서도 친절한 반응이 돌아왔다. 하는 일도 쉬운 편이었다. 내과처럼 하루 종일 피 뽑고 주사를 놔야 할 줄 알았는데, 피부과라 그런지 환자 접수 및 처방전 전달. 전화 혹은 대면으로 피부관리 예약 날짜를 잡아주는 게 업무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피부 질환 발병률이 낮아지자, 병원을 찾는 환자가 줄었다. 이제는 제법 일에 적응도 됐고, 몇 개월간 받은 월급도 차곡차곡 통장에 쌓인 뒤였다. 그때부터 나는 점심시간만 되면 핸드폰에 글을 썼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은 5분 만에 밥을 먹고 조금이라도 더 쉬기 위해 피부관리실 침대에 누워 쪽잠을 잤지만,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매일 같이 핸드폰 자판을 두드렸다. 점심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때문인지 글이 더 잘 써지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왕고쌤은 말했다.
“젊어서 아직 팔팔하구나~ 나도 개미 나이였으면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그 말은 내 마음속에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안정된 일상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 저녁. 책상 앞에 앉은 나는 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웹소설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었지만, 시골이라 배울 곳을 찾기가 어려웠고, 온라인 수업은 직장과 병행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때 퇴근길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미술학원 건물이 떠올랐다. 다음 날 출근길에 미술학원 창문에 붙은 ‘성인 취미반’이라는 글씨를 보고 전화를 걸었고, 퇴근하자마자 학원에 방문해 등록을 마쳤다. 그렇게 나는 첫 직장을 다니며 일주일에 세 번. 미술학원에 갔다.
첫 수업은 새하얀 도화지 위에 선 긋기를 연습하는 것이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연필심이 흰 도화지를 까맣게 덮었다. 선으로 면을 다 채운 후에는 사선으로 선을 그었다. 처음엔 잔뜩 긴장해서 소심하게 그었는데, 점점 과감한 선 긋기로 이어졌다. 기본이 잘되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말에 손바닥 옆 부분이 새까맣게 변할 때까지 열심히 그었다. 병원 데스크에 앉아 있을 때도 짬만 나면 이면지 위에 선을 그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해서 바쁘게 오전 근무를 하고, 1시부터 2시까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소설을 쓰고, 7시까지 비교적 한가한 오후 근무를 하며 그림 공부를 했다. 퇴근 후에는 부랴부랴 미술학원에 가서 버스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어떤 날은 그림 그리는 데 몰두해서 막차를 놓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집 가는 버스 안에서는 점심에 쓰던 소설을 이어 썼고, 집에 가면 핸드폰에 쓴 글을 노트북으로 옮겨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마지노선인 12시가 되면 내일을 위해 아쉬운 잠자리에 들어야 했지만, 그때는 힘든지도 모르고 했다. 학생 때도 안 났던 코피가 쏟아져도 그날의 열정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덧 왕고쌤 나이가 된 나는 병원에서 근무하지도, 미술학원을 다니지도 않는다. 대신 5년 동안 가꾼 농장으로 향한다. 여름엔 에어컨 바람 때문에 카디건을 껴입어야 하고 겨울엔 히터 때문에 반팔 유니폼 차림으로 근무했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는 뙤약볕 아래에서 폭염과 싸우며 밭작물을 가꾼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다. 해가 뜨면 밭에 나가야 하고, 정말 바쁜 시기에는 해가 떨어져도 가족 모두 손전등을 들고 일을 해야 한다.
밭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고 집으로 돌아오면 글 한 줄도 쓰기가 어렵다. 한동안 손도 대지 못한 글은 그나마 다시 이어가고 있지만, 한 번 놓아버린 붓을 다시 쥐기란 어려웠다. 몇 번이나 시도해 봤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그려지지 않으니 결국 그림과 커다란 벽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내가 다니던 미술학원은 기계를 들여 디지털 드로잉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직접 쓴 웹소설의 삽화를 직접 그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거창한 그림이 아니더라도 에세이에 넣을 아기자기한 그림 정도는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다시 일상툰이 뜨는 추세던데, 인스타툰에 도전해 볼까?’
등등 주기적으로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내 글을 조금 더 잘 팔리는 글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을 배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옛날처럼 무작정 미술학원에 찾아가 등록하던 패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날의 열정이 그리웠는지, 엄마와 고추밭에서 일을 하다가 툭 하고 옛날얘기를 했다. 그땐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지금은 다시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다며, 이제는 새로운 도전보다 안정된 일상이 주는 안락함이 좋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그런데 엄마가 뜻밖에 말을 꺼내셨다.
“농번기야 바빠서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농한기엔 여유 있잖아. 올겨울엔 몇 개월이라도 미술학원 다녀봐.”
그 말 한마디가 멈춘 것만 같았던 나의 열정에 기름칠을 해준 것 같았다. 어쩌면 ‘바빠서’,‘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서’라고 말하면서도 누군가 내 마음에 불씨를 다시 지펴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되며 하나둘씩 밭작물을 정리하는 요즘, 미술학원에 갈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매일 같이 가슴이 뛴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이 열정은 언제 다시 약해질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안다. 완전히 꺼져버린 것 같았던 열정은 누구의 마음속에나 여전히 살아있고, 언제든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는 오래오래 지켜내고 싶다.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나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