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선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취업이 잘 안되는 학과래.”
혼돈의 고3 시절. 중학생 때부터 호텔리어를 꿈꾸던 단짝 친구가 갑자기 간호학과를 지원했다. 예상치 못한 친구의 선택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역시나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4년제 대학 등록비가 부담됐다. 졸업 후에도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는 소문에 선뜻 지원할 수가 없었다. 결국 차가운 현실 앞에 나 역시 오랜 시간 꿈꾸던 문창과를 포기하게 되었다.
내가 지원하게 된 학과는 치기공과였다. 졸업 후 치과에서 의뢰를 받아 보철물을 제작하는 일을 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혼자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은 내가 문창과가 아닌 치기공과에 원서를 넣은 걸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나는 애써 웃으며 “일단 돈부터 벌어놓고, 글은 취미로 쓰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선택에 확신은 없었다. 문창과가 너무 가고 싶었다. 그러나 원서 접수는 이미 끝난 후였다.
치기공과에 합격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언니들의 도움으로 부모님을 설득했고, 대학 진학 자체를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2년 동안 글 쓸 시간을 얻는 데 성공했다.
야심 차게 웹소설에 도전했으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12년 동안 내가 학교에서 배운 글은 순문학이었고, 웹소설은 철저히 상업소설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안 그래도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똑같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일곱 명의 청년 이야기를 보여줬다. 장르는 로맨스로 선택해 놓고, 연애 얘기가 아닌 알바와 취업 등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말 그대로 글을 읽으며 잠시나마 웃고 싶은 사람들에게 물도 주지 않고 고구마만 팍팍 먹인 격이었다. 1년 반 동안 한 작품에 매달려 네이버 웹소설 챌린지리그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뻔했다. 인기도, 관심도 없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이 처음으로 피부에 와닿았던 시기였다.
남은 6개월 동안 자전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서울에서 서산으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혼자 할머니 집에 맡겨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일기장을 펼쳐놓고 에피소드를 몇 개 뽑아 소설을 써 내려갔다. 허구를 섞어 만든 이야기였지만,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라 그런지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글은 내가 쓴 작품 중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이 가장 좋아해 줬고, 얼굴 모르는 독자님이 ‘너무 맑은 글이라 읽는 내내 행복해지는 글이에요.’라고 첫 댓글을 남겨준 글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글을 쓰기 위해선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얻은 순간들이야말로 좋은 이야기의 원천이라는 것을.
21살이 된 나는 무작정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했다. 국비 지원 덕분에 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었다. 새로운 영역에서의 배움은 소재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동 간호를 배우며 ‘분리불안’이나 ‘분노 발작’ 같은 주제들이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간호 공부를 하며 웹소설에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육아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전과 다르게 조금씩 독자들의 반응이 늘어났다. 낮에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집에서 글을 쓰는 생활이 이어졌다. 이전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글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실습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나 역시 긴장했지만, 한 편으로는 살면서 쉽게 해보지 못할 경험들이 기다리는 것 같아 기대됐다.
학원에서 지급된 노란색 실습복을 입고 도착한 곳은 대학병원 응급실이었다. 동기들은 모두 병실에 배정되었기 때문에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오히려 설렜다. 응급실은 병동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향한 응급실에서 내가 만난 첫 환자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간 아주머니였다. 영화 속 분장과 확연히 달랐고, 응급실의 분위기 역시 영화처럼 분주하고 극적이지 않았다. 환자의 시점에서 보면 분명 급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의료진의 시점에서는 신체 절단 환자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일까? 생명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차갑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해드릴 게 없어요. 더 큰 병원으로 연계해 드릴게요.”
다친 손을 꼭 붙잡고 계시던 아주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앰뷸런스를 타고 떠나셨지만, 아주머니의 표정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현실감 없던 장면들은 한 편의 영화처럼 기억되었다. 그 후로도 많은 환자가 저마다의 사연을 안은 채 응급실을 오갔고, 생사를 다투는 다양한 상황을 마주했다. 그때마다 나는 실습복 주머니에 넣은 수첩을 꺼내 들어 짧지만, 강렬했던 장면과 환자분과의 인상 깊었던 대화 등을 메모했다. 직접 경험한 것만큼 글쓰기에 좋은 양분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응급실 다음 실습지는 정형외과 병동이었다. 그곳에서도 이야기는 끝없이 쏟아졌다. 특히 바이탈 체크를 위해 들어간 1인실 병동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사건은 정말 드라마틱한 경험이었다. 드라마 속 우연한 만남이란 게 마냥 허구적인 설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병동 실습생의 하루는 입원 환자들의 약을 받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마다 약제실 앞에는 병아리 같은 실습복을 입은 학원 동기들로 넘쳐났는데, 하루는 약제실 선생님께서 엄마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많이 즐겨요~ 실습할 때가 제일 재밌어. 책임질 일이 없거든.”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고, 덕분에 남은 시간 동안 관찰자로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4개월간의 실습이 끝나고 학원으로 돌아오니, 동기들은 다들 힘들었다고 했다.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후회는 없었다. 작가로서의 시야가 넓어진 값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수첩 안에는 그때 만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몇몇 에피소드는 이미 한 편의 소설 속에 녹아들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문창과를 포기했을 땐 글 전체를 포기한 것처럼 아팠지만 결국 방황과 실패. 그리고 새로운 도전의 경험들이 결국 나의 우주를 넓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