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용기가 또 다른 이의 꿈을 열어주다
Chapter 1.
작고 소심한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법
“과학 상상 글짓기 지원자가 너무 적은데, 혹시 바꿀 사람 없니?”
왁자지껄했던 교실은 찬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다. 담임 선생님의 시선은 교복 입은 아이들의 얼굴을 한 명씩 확인하다가 나한테서 멈췄다. 그리고 도서부인 나를 콕 집어 글짓기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지원자가 적어서 조금만 잘 써도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솔깃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글짓기 대회’ ‘백일장’이라는 단어는 뭔가 딱딱하고 전문적인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원고지 쓰는 법도 생소하기만 했다. 안색이 창백해진 나는 완강히 도리질 치며 거절했다. 선생님은 끝내 아쉬워하셨지만, 하는 수 없다는 듯 내 손에 원고지 대신 도화지를 쥐여주셨다. 글짓기 대회에는 반장 포함 서너 명만 참가했다.
대회가 시작되자, 물로켓 대회와 고무 동력기 대회 지원자들이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물감을 펼쳐놓고 흰 도화지 위에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원고지 묶음을 받은 반장도 구석진 자리로 걸어가더니 진지한 얼굴로 볼펜을 움직였다. 어느덧 밑그림이 완성되고, 물감을 머금은 붓을 휘갈기며 채색이 들어갔다. 실시간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겼지만, 한 번 물감이 지나간 자리는 다시 고칠 수 없었다. 반장은 여전히 원고지 앞에 앉아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 원고지 한 장을 통째로 뜯어 공처럼 구겼다. 나중에는 원고지가 모자란다며 선생님께 한 묶음을 더 받아 갔다. 그 아이의 손에 들린 원고지에 왠지 모를 눈길이 갔다.
한참이 지나 겨우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함께 그림을 그리던 지원자들은 하나둘 작품을 제출하고 운동장에 나가 대회를 구경했다. 교실엔 나와 그 친구 단 두 사람만 남았고, 나는 아쉽기만 한 작품을 교탁에 제출했다. 어느덧 반장도 볼펜을 내려놨다. 이따금 창밖을 내다보며 운동장을 구경하던 반장은 시간이 지나도 원고지를 제출하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반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직 다 못 썼어?”
“다 쓰긴 했는데, 수정할 부분 있을까 봐 제출 전까지 갖고 있으려고.”
한 번 칠하면 그걸로 끝인 그림과 다르게, 글은 끝없이 다듬을 수 있다는 말에 흥미가 생겼다. 나는 반장에게 글을 읽어봐도 되냐고 물었고, 반장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흔쾌히 원고지를 내주었다. 한 묶음 하고도 세 장이 더 있었다.
반장이 쓴 글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세상 속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는 옛것이라는 메세지가 담긴 ‘단편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실험에 몰두하며 인생을 바치지만, 임종을 앞둔 그의 선생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원고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는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었다. 반장이 그런 소설을 썼다는 것도 놀랐지만, 딱딱한 논설문을 제출해야 할 것 같았던 글짓기 대회에 단편 소설을 제출해도 된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진짜 잘 썼는데? 너 상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나의 짧은 감상을 들은 반장은 얼굴을 붉히며 원고지를 돌려받았고, 다음 주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 앞까지 불려 나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선생님의 권유대로 그림이 아니라 글을 선택했다면, 나도 저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친구를 향해 열심히 손뼉을 쳤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부러운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과학 상상화 그리기 부문으로 참가했는데, 어찌 과학 상상 글짓기상을 받은 친구가 부러웠을까?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날 이후 교내외에서 열린 백일장에 하나둘 참가하기 시작했다. 반장 덕분에 글짓기 대회가 마냥 딱딱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전보다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참가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부지런히 이야기를 만들었다. 교내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에선 ‘농부의 딸과 상처 난 감자’라는 단편 소설을 써냈고, 교외 남북통일 기원 글짓기 대회에선 탈북 주민 친구가 학교에 다니면서 벌어지는 단편 소설을 창작해 냈다. 운 좋게도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상금으로 문화상품권 열 장을 받았을 땐 정말이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글을 쓸 때만큼은 소심한 성격을 깨부수고 거침없이 펜을 휘갈기는 내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재능과 별개로 나 스스로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일 년에 열 번은 글짓기 대회에 나갔다. 덕분에 교내에서 ‘글 잘 쓰는 아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제는 미술 선생님뿐만 아니라 문학 선생님께서도 나를 아꼈고, 쉬는 시간마다 미술부와 문예부 언니 오빠들이 찾아와 동아리 가입을 권했다. 처음으로 그림과 글 사이에서 고민했다. 결국 미술부는 어마어마한 재료비 때문에 포기했고, 글을 쓴 뒤 낭독하며 감상을 나눠야 한다는 문예부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포기했다. 대신 3년 동안 꾸준히 백일장에 참가해 상을 휩쓸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때 문예부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글이란 건 결국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쓰이는 것인데, 그땐 왜 그렇게 용기가 없었을까? 더불어 자신의 글을 선뜻 보여준 반장이 떠올랐다. 만약 그날 그 친구가 글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글짓기 대회는 논설문을 써야 한다’라는 생각 속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친구지만,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나의 고정관념을 깨주고 글과의 인연을 열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한 사람의 용기가 또 다른 이의 꿈을 열어줄 수 있다는 걸, 그 친구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