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농부가 되었다는 증거

모두 파릇파릇한 싹을 틔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by ㄱHMㅣ

3월의 어느 날. 다음 달에 심을 땅콩 모종을 만들기 위해 씨종자로 보관해 놓은 땅콩을 꺼내 들었다. 쥐가 갉아 먹지 못하도록 양파망에 담아 하우스 파이프 위에 묶어놨는데, 그 높은 곳까지 어떻게 올라온 것인지 쥐가 입질을 해놨다. 내년 농사를 위해 일부러 상품 가치가 좋은 땅콩을 팔지도 않았는데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구멍 뚫린 양파망 아래로 땅콩이 모조리 쏟아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하우스 한복판에 상토를 쏟아부었다.


50구짜리 모종판 위로 상토 흙을 가득 채우고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 구멍을 만들면 땅콩 종자 파종 준비가 끝난다. 이제 할 일은 바싹 마른 껍데기를 깨서 그 안에서 살고 있던 작은 땅콩 알을 모종판으로 이사시켜 주는 것이다.


KakaoTalk_20250609_171640989_02.jpg


"땅콩 캐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땅콩 심을 시기가 왔네."

"그러게요. 농번기 때는 하루가 너무 길게만 느껴졌는데 농한기는 왜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땅콩 면적이 많이 줄어서 농사짓기 수월하지 않았니? 너 초등학교 다닐 땐 작년에 열 배는 더 심었다."

"와,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우리도 땅콩 농사를 크게 지었던 적이 있었네요."


엄마와 옛 추억을 나누다 보니 머릿속에 광활하게 펼쳐진 그 시절 땅콩밭이 펼쳐졌다.


*


"나도 추석엔 놀고 싶단 말이야!"


기껏 주운 땅콩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며 내가 소리를 질렀다. 흙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짜증을 부리던 나는 얼른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경운기가 탈탈 돌아가는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혔는지 엄마는 여전히 땅콩을 뽑아 흙을 털어내느라 바빴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공깃돌처럼 흙밭을 나뒹구는 땅콩 이삭을 청소기로 빨아들이듯 재빨리 주워 담았다.


우리 집은 추석마다 땅콩을 캐야 했다. 시골집에 이사를 오게 된 후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께서는 밭을 놀릴 수 없었고, 밭이란 밭에 모조리 땅콩을 심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할머니 댁도 가고 싶고, 가족끼리 2박3일 여행을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수확 시기가 임박해 누렇게 변한 땅콩잎을 보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게 어린 나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푹푹 찌는 더위 아래에서 아빠는 경운기에 땅속 작물 수확기를 달아 땅콩이 심어진 두둑을 쭉 밀고 지나갔다. 그러면 엄마가 그 뒤를 쫓으며 땅콩에 엉겨 붙은 흙을 털어냈고, 언니는 또 그 뒤를 따라다니며 커다란 바구니에 땅콩을 떼어냈다. 내가 할 일은 땅콩이 뽑혀 나간 자리에 떨어진 굵은 이삭을 줍는 일이었다.


땅콩은 꼭 크고 좋은 것만 떨어졌다.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제대로 훑고 가지 않으면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여기 땅콩 이삭이 한 움큼이나 있네? 이게 가장 상품 가치가 좋은 것들이라 땅속에 다 묻혀버리기 전에 잘 주워야 해.” 벌써 세 번째로 잔소리였다. 분명 내가 볼 땐 없었는데? 왜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땅콩이 엄마 눈에만 보이는 걸까. 억울함에 말도 안 나왔다. 나는 입술을 댓 발 내민 채로 씩씩거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눈에 띄는 땅콩을 닥치는 대로 줍다 보니 엄마 말대로 한 움큼이었다.


도대체 이 작은 땅콩이 뭐라고 매년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땅콩 농사를 짓지 않을 땐 친할머니, 외할머니댁을 다 방문하고 맛있는 음식도 잔뜩 먹었는데. 친척 언니 오빠들과 만나서 재밌게 놀지도 못하게 되자 나는 당장이라도 땅콩의 잘록한 허리 부분을 두 동강 내버리고 싶었다.


힘을 너무 준 탓이었을까? 따닥- 하는 소리와 함께 땅콩 껍데기가 벌어지며 손바닥 위로 땅콩 알 두 개가 또르르 굴러 나왔다. 흙빛 껍질과 대조되는 분홍빛 알맹이는 볶은 땅콩보다 훨씬 컸다. 엄마의 눈치를 살핀 나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생땅콩을 날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생땅콩이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잘게 부서졌다. 고소한 맛보다는 비린 맛이 강했는데 비 온 뒤 맡던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땅콩을 갓 캤을 때만 맛볼 수 있는 희소성 때문이었을까? 불호에 가까웠던 그 오묘한 맛은 오래도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땐 온 세상의 땅콩이 다 사라지길 바랐는데, 지금은 땅에 떨어진 이삭 하나도 아까워서 두 번 세 번 호미로 파보게 되더라고요. 얼른 땅콩 캐고 싶어요. 이제는 한 알도 남김없이 주워줄 자신 있는데."

"그게 너도 농부가 되었다는 증거지. 그나저나 밭에 심기도 전에 벌써 수확할 생각을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그렇지만 생땅콩 맛이 그리워서 어쩔 수가 없는걸요."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모종판에 땅콩을 심다 보니 벌써 1kg의 씨종자가 바닥을 보였다. 마지막 한 알까지 상토 위에 쏙 집어넣은 내가 엉덩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열 판도 안 되는 모종판을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옮겨놓고 나니 뻐근한 허리 통증이 싹 날아가는 것 같았다.


농사는 항상 그렇다. 시작하기 전엔 정말 하기 싫고 힘들지만, 막상 일을 끝마치고 나면 “왜 보람차고 난리?”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뿌듯하다. 주도적으로 농사를 짓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5년 동안 농사일을 돕다 보니 초보에선 벗어난, 이름하여 ‘세미 농부’인 나는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와 땅콩이 잠들어 있는 모종판 위로 솔솔 뿌렸다. 긴 잠에서 깨어난 땅콩이 한 알도 죽지 않고 모두 파릇파릇한 싹을 틔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브런치스토리 마무리.jpg


작가의 이전글02. 서툰 걸음을 이어가는 송아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