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빨 뺐어

by 김율리

엄마, 나 오늘 이빨 뺐어. 내 몸에서 가장 단단한 것인데, 어찌하면 빼지 않을까 일 년 이상 고민을 하다 결국 오늘 빼고 말았어. 의사가 말했어. 솜을 꽉 물고 배어나오는 피와 침은 꿀꺽 삼키라고, 그래야 지혈이 빠르다고.

엄마, 어떤 여류시인이 지금 내 나이 즈음을 콩떡이라고 하더라. 부드럽고 말랑하고 구수하지만 누구도 선뜻 집어가지 않는 뷔페상 위의 콩떡이라고, 그리고 진종일 돌아다녀도 개들조차 슬슬 피하는 나이라고. 엄마, 개도 슬슬 피하는 엄마의 콩떡이는 오늘 오후 반평생을 함께 했던 이빨 하나를 치과의 차가운 스텐접시 위에 버려두고 왔어. 나는 왜 이빨을 집어 와서 지붕 위에 던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파트에 사니 지붕 위에 던질 수 없어서 그런 것만도 아닐 거야. 아마 이제는 다시 날 이빨이 없다는 걸 아니까 그랬던 것 같아. 그래도 너무 했지, 집에 데리고 와 말갛게 씻어주고 한 번 더 찬찬히 본 다음 보내 줄 걸 그랬네.

솜을 꽉 물고 걸었어. 치과에서 회사로 걸어오는데 엄마의 자리가 눈에 확 들어오네. 사람이 많이 다니는 횡단보도 앞 화단, 엄마가 곧잘 앉아있던 그 자리 말이야. 나 편하라고 엄마 집을 회사 옆으로 옮겨놨더니 엄마는 이유도 모르면서 그저 좋아만했잖아, 딸이 가까이 있어 무슨 일이 생기면 한달음에 올 수 있으니 안심이라며…… 나는 점심 때 커피를 사러 그 길로 올라가곤 했지. 화단에 나와 앉은 해사한 얼굴의 엄마를 가끔 만나기도 하면서 말이야. 뜨거운 커피를 쥔 나는 차가운 아이스크림 한 컵을 엄마에게 쥐여 주고 손을 빠이빠이 흔들며 회사로 돌아오곤 했는데 오늘 저녁 어스름에 그 화단을 지나왔어. 나는 의사의 말이 생각나 침을 꿀꺽 삼켰어. 그런데 왜 눈물도 같이 꿀꺽 삼켜지는지 모를 일이야.

아마 엄마를 멀리 보낸 지가 며칠 안 되어서 그런지도 몰라. 나 힘들다며 서울에서도 두 시간을 더 가야하는 곳에 사는, 이젠 손자도 생긴 엄마 큰 딸이 향단이 바통을 잠시 받아가네. 엄마 나 나쁜 딸인가 봐, 이렇게 편안해하다니. 이제 한동안은 커피를 사러 올라가도 엄마를 못 만나는데 말이야.

엄마, 그 시인은 또 말하더라. 지금 내 나이 즈음은 부모도 있고 자식도 있는 가장 완벽한 나이라고…… 맞아 엄마, 나는 모녀삼대의 중간에 있으니 아주 완벽하지. 그런데도 나는 여름 내내 불평을 했어. 이제껏 심청이 노릇을 해왔는데 이 독한 여름, 이젠 향단이를 해야 하니 이게 무슨 경우냐면서. 음전하던 엄마가 많이 아프더니 춘향이처럼 시중들 일이 점점 생겨났잖아. 심청이 때는 참 좋았거든, 한 번씩 연꽃도 뜨곤 했잖아. 정말 심청이처럼 바다 위에 연꽃이 둥둥 떠오르더니 나를 태워주더라고…… 그저 끄적끄적 써 낸 글들이 세상 위로 둥실 떠오르곤 했으니까. 고운 연꽃을 타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하지만 엄마, 나는 그때 마다 생각했지 이건 내가 쓴 글이 고와서가 아니고 심청이 새경이 분명하다고.

엄마, 어쩌면 이렇게 지독한 여름이 있을 수 있을까. 온 몸이 파사삭 부서질 듯 메마르고 들이키는 호흡에 허파꽈리가 익는 줄 알았어. 비 오는 날 태어난 나는 건조하면 못 견디는데 이토록 메마른 날씨 속에 왜 그렇게 바짝바짝 가슴 마르는 일만 생기는지……. 엄마는 봄부터 여름까지 입원보따리를 쌌다 풀었다를 반복한데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풀씨같이 여린 것이 빈틈없는 세상에 뿌리를 내리려고 여름 내내 칼끝을 걸었잖아. 백 명을 젖혀내야 제 자리가 생긴대. 그런데 천대 일, 만대 일을 뚫은 제 엄마가 한 집에 버티고 있으니 아이는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서 병원에도 가지 않더라고. 몸에 멍울이 잡혀 수술을 해야 하는데, 병원에서는 빨리 해야 한다는데 아이는 미루고서 공부를 하고 앉았더라니까. 걱정하는 나에게 병리를 전공한 아이는 자기가 잘 아니까 괜찮다며 가슴멍울을 그대로 안고 공부를 하더라. 시험을 치자마자 바로 다다음날 수술을…… 하네. 아이가 엄마처럼 해사한 얼굴로 병원을 나서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했어. 엄마, 나는 참 나쁜 엄마인가 봐. 가만있어도 아이에게 부담을 주잖아. 어디 말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없는 듯이 지냈어.

엄마, 시인은 시 말미에 이렇게 이야기를 해. 꽃병에 상처 입은 꽃이 숨을 할딱이며 꽂혀 있지만 두렵지는 않다고, 정말 그런 것 같아. 의사가 내 상처를 꿰매 주었거든, 이빨이 빠져나간 잇몸에 쇠로 만든 심을 박고는 바늘로 꽁꽁 꿰매 주었어. 그리고 말했어. 느티나무, 엄마가 앉아있던 화단 뒤의 그 느티나무에 푸른기가 가실 즈음이면 상처가 다 아물 거라고, 또 한동안 지나면 감쪽같은 새 이빨을 끼워 줄 거라고. 나는 이빨을 지붕에 던지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생각해, 어릴 때 부르던 노래가 진짜구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하고 손을 두드렸었는데 그 두꺼비가 아직 살아있나 봐. 헌 이빨을 가져가고 새 이빨을 주겠다는 걸 보니. 가을이 끝나려고 할 때, 빨간 나뭇잎이 떨어지고 노란나뭇잎도 다 떨어질 그 즈음이면 새 이빨을 가져다준다고 오늘 분명히 약속을 했어.

생각해 보니 두꺼비가 새 이빨을 가져 올 즈음이면 엄마도 돌아오네. 엄마는 다시 그 횡단보도 옆 화단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그러면 내가 커피 사러 가는 길에 파란 아이스크림도 사 주고, 노란 아이스크림도 사 줄텐데. 그런데 엄마, 이건 뇌물이거든…… 나를 향단이로 만들지 말아달라는 달콤한 뇌물. 훗! 우습다. 모녀간에 뇌물이라니.

아, 또 침을 꿀꺽 삼켜야 될까 봐 잇몸에서 지금도 피가 나거든…… 그런데 엄마, 침을 삼키면 아직도 눈물이 울컥 목을 넘어가. 이상한 일이네 두렵지는 않은데 왜 아플까, 왜 지혈이 안 될까. 솜을 좀 더 꽉 깨물어야 되려나봐.

*이빨은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나 전달력과 운율상 이빨로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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