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피

by 김율리

엽이야! 너 혹시 푸른 피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나 몰라. 코가 얼얼한 게 아니라 가슴이 먹먹해 지는 그 냄새 말이야.

세상에, 한나절이 지났는데 코끝에는 아직도 그 냄새가 달려 있네. 모든 신경은 뇌로 가는 게 아니었나, 그 푸른 피 냄새는 왜 자꾸 가슴에 번지는 게야. 내 후신경의 어디가 잘못 되었나 봐. 아이고, 내가 못살아.

나 오늘, 늦은 출근을 했었어. 비수기라 점심까지 느긋하게 챙겨 먹고는 차를 느릿느릿 움직이며 창밖 풍경에 눈을 두고 그렇게 가고 있었지. 가로수로 서 있는 은행나무들이 흔들흔들 하더라. 차창을 쫘악 내렸지, 바람을 느끼고 싶어서. 그런데 바람보다 먼저, 훅하니 달려오는 그것. 너무도 신선한, 가슴 저 밑바닥까지 청량해지는… 그래 그건 냄새였어. 피 냄새. 푸른 피의 냄새였어.

피 냄새라니, 무슨 일이 어찌 된 거냐고? 아, 나는 괜찮아. 세상 먼지가 모공 하나에 까지 빈틈없이 틀어박힌 나에게서 그런 신선한 냄새는 무슨, 어림도 없지.

푸른 피는 까만 아스팔트에 흩어져 있었어. 도로 위에 찢긴 잎들이 가득했거든. 아직 푸른데, 아니 이제 막 푸른데 떨어지고 찢어져서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더라. 이를 어째. 이 살벌한 도로 위에서 저 풋내 나는 것들이 어쩌자고…. 우왕좌왕 하던 이파리들이 숨을 몰아쉬고 화르락 날아오르더라. 하지만 길을 벗어나기에는 어림없는 몸짓이었지. 게다가 질주하는 차바퀴를 피하느라 온전치 못한 몸으로 이리 저리 정신없이 몰려다니는 그들의 절박한 모습, 황망했어. 아득했어.

그래, 지난 밤 바람이 몹시 불었었지. 세상 모든 것이 바람의 몽둥이에 흠씬 두들겨 맞았더랬어.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비 보다 바람이 먼저 올라오네. 그 놈의 바람은 선발대로 올라오니 신이 나고 힘도 넘쳤나봐. 아파트 사이를 뛰고, 박고, 솟으며 밤새 톳재비놀음을 했었지. 골바람이 되어 윙윙 건물을 감돌다가 냅다 유리창에 달라붙곤 하더라. 베란다 창을 빨판처럼 움켜쥐고는 열지 않으면 깨어 부순다고 행패를 부리더라. 그 포악이 어디라고 안 갔겠어, 나무라고 그냥 두었겠어. 결국, 푸르고 연한 잎들을 저리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생명줄을 끊어 놓았네. 처참하기도 해라.

사람의 세상에도 처참한 일이 생겨나고 있어. 얼마 전이었지. 어둡고 깊은 터널에서 눈빛 초롱한 아들 하나가 별이 되어 날아갔잖아. 푸르고 연한 것이 찢어지고 으깨어지며, 진동하는 제 피 냄새 속에 숨을 맺었다지. 숨을 맺으면서 그 푸른 엇부루기가 마지막 본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순간은 막막한 어둠 외에는 본 것이 없었을 지도 몰라. 차라리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영혼이 몸을 떠나올 때, 한 동안은 볼 수 있다더라. 제 육신의 집이었던 몸을 내려다 볼 수 있다고. 찢어지고 으깨어진 제 몸을 내려다보며 그때에야 비로소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지 않았을까.

불가사리 때문이라 하더라.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불가사리, 시뻘건 촉수를 온 몸에 돋우고 눈에 띄는 모든 걸 집어삼키는 불가사리. 오래되어 더 사나운 그 묵은 불가사리들이 햇볕 환한 곳은 죄다 잠식해 버렸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나봐, 그 아이는. 들어… 갔어야 했었다나 봐, 깜깜한 어둠 속으로. 대포 같은 지하철이 쉴 새 없이 오고가는 그 죽음의 터널 속으로, 혼자서.

착한 아들이었다고 하더라. 이제 마흔을 조금 넘긴 그 아이의 엄마.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아직 소녀 같은 그 엄마는 그렇게 가르쳤대. 시키는 대로 잘하고 힘들더라고 참으라고, 세상은 그렇게 사는 거라고. 아이도 묵묵히 견뎠다고 그랬어, 언제고 ‘굳은 직장’이 될 거라 믿었대. 한 갈래 머리를 묶은 그 엄마도, 점심을 거르며 일하던 풀잎 같던 그 아들도… 너무 착했나 봐. 시류를 읽는 영악함이라곤 손톱만치도 없었었나 봐. 요즘 세상을 살면서 대체 왜 그렇게 착하다니 그 모자는, 정말 내가 못살겠네.

남쪽의 어느 섬에서는 살생부가 돈다더라. 그 곳은 성채城砦 같은 배를 만들어내는 짱짱한 일터를 품었다고 감때사납기가 짝이 없었잖아. 네온사인이 밤새 바닷물에 젖어들고,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닐 만큼 흔전만전했었잖아. 그런데 그 곳이 요즘 긴장하고 있다더라. 천년만년 우뚝할 것 같던 그 뱃일터가 퍼석얼음 위에 놓인 탓에 형광등마저 잦아드는 적요의 섬이 되어가고 있다더라. 사람들은 벌레처럼 더듬이를 세우고 살 구멍을 찾기에 온 신경을 몰두한다지만 언제 내쳐질지 누가 알겠어. 찢긴 잎처럼 길 위로 내 몰릴지 그 누가 알겠냐고.

늘상 빈혈에 시달리면서도 태산처럼 큰 덩치로 대마불사를 외치는 통에 짤랑짤랑 철분을 많이도 들이부었었지. 그 철분제를 만드느라 우리네 부모, 형제, 자식들은 손이 곱아지도록 일하며 세금이란 걸 참 많이도 내었었고. 그런데도 세상에, 암막커튼으로 세상눈을 다 가려놓고서는 수많은 갈가위들이 날아오고 날아갔대잖아. 날개 튼실한 그것들이 알짬이란 알짬은 속속들이 다 빼먹고 허물만 남겼다네. 어떤 식자가 말하기를 탐오지풍貪汚之風이라더라. 참 맞는 말이다. 바람이, 어쩌면 그런 바람이 그렇게 불었을까.

하지만 엽이야, 늘 보았듯이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나무둥치가 먼저 쓰러지는 일은 결코 없지. 제일 먼저 당하는 건 가장 여린 것, 그러니까 이파리들이지. 생채기 나고 찢어지고 떨어져서, 사람의 발에 자동차의 바퀴에 사정없이 으깨어지지.

떨어진다고 그게 모두 낙엽이고 단풍이겠어. 제 절정을 누리고 떨어지는 붉은 잎은 서럽지 않아. 둥치와의 작별을 찬찬히 준비하고 때가 되면 잎자루의 핏줄을 거두어 제 스스로 낙하하지. 그리고 가벼워진 몸을 바람에 실어 어디로든 편히 가지. 그러나 핏물 가득한 푸른 잎은 뜨거운 동맥으로 둥치와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 그런데 떨어진다는 것은, 그 굵은 핏줄이 잘리우는 것이고 그것은 삶의 마감이지. 새파란 무거운 몸으로 어디를 어떻게 날아갈까. 오늘처럼 사방에 푸른 피 냄새만 자욱할 뿐이야.

옛날 양반님네 집에는 매 맞는 아이가 있었다고 해. 주인도련님의 책보를 끼고 서당을 따라다니던 아이, 복건 쓴 도련님이 깜빡 졸기라도 하면 싸리회초리로 피나게 종아리를 맞는 건 그 아이 몫이었다고 하지. 추운 겨울이고 더운 여름이고 언제나 서당 마루 아래 쪼그려 앉아 마음 졸였을 가여운 아이. 어른이라 달랐겠어, 아이 큰 게 어른이라잖아. 양반이 죄를 지으면 관에게 말을 하지. ‘이제 내가 집에 가서 종놈을 보낼 것이오.’ 관은 또 죄 없는 노비에게 주인의 죄를 얹어 매를 쳤다더라. 형구를 내어 걸고 노비의 볼기를 치고픈 대로 쳤다더라.

세상일은 늘 똑 같아. 세월 따라 철 따라 모양만 다를 뿐, 어찌 그리 같은 바람으로 불어 가는지. 지금도 여전하다니까. 지하터널에서 문짝을 고치던 그 어린것만 해도 그래. 아니 맞을 매를 맞고 목숨을 빼앗긴 거잖아. 껍데기만 남은 남쪽의 섬도 마찬가지지. 허방을 짚고 일터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건 알짬 빼먹은 그들인데, 그들은 결코 책임 지지 않아. 가장 먼저 베여나가는 건 바람에 시달리며 온 몸으로 일해 온 아랫사람들이지. 구조조정이라는 비장한 구호 아래 무작정 희생을 강요당하지.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살육이야.

그러고 보면 신분제는 지금까지 질기게도 살아남았고, 앞으로는 더 강한 위력을 떨칠 것 같네. 이 땅에는,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양반의 삶을 누리는 이와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하고도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천민이 존재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 이분화는 점점 강화 되어가고 있으니 이게 큰일 아니냐. 한동안은 없어졌나 느꼈지만 그건 우리의 야무진 착각이었을 뿐이고.

엽아, 이런 일들을 듣고 보노라면 우리의 젊은 날이 생각난다. 그 풋풋했던 시절, 너와 나는 같은 곳을 다르게 바라보며 참말 많이도 싸웠다. 온 몸에 최류탄 냄새 풀풀대며 목이 쉬어오던 너를 두고 나는 만날 말렸었지. 그 깊은 물에 왜 들어 가냐고, 못 살아오는 이도 많은 그 어두운 물에 하필 네가 들어 가냐고 성을 발칵발칵 내며 뜯어 말리곤 했었지. 너는 더 했다. 네가 뭘 아냐며, 키 큰 너는 내 머리통 위에 화를 동이 채 벌컥벌컥 들이부으며 그저 너 하나 살아남으려 하는 이기적인 네가 뭘 아냐고 분통터져 했지. 나라고 지고 있었겠냐. 내가 제대로 서야 남을 건질 수 있다고 빠득빠득 악착을 부렸지.

그 즈음은 그랬다. 대부분이 너 아니면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역사의 주인인줄 알았다. 새 세상을 열어가노라며 벅차하고 감격해 했지. 하지만 그렇게 열어 온 세상이 이런 모습이라니, 참 아프고 저리다. 내가 살겠노라 남의 아들을 죽음의 터널로 밀어 넣는 불가사리, 대마의 알짬을 왁살스레 빼 먹은 그 사악한 갈가위들이 같은 구호를 외치던 그 무리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너나 나나 똑똑하고 영악한 부류는 못되었다는 것이야. 덕분에 날개 두꺼운 갈가위나 시뻘건 촉수의 묵은 불가사리로 진화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옳고 그른 것을 제대로 가리지 않는, 그저 시류나 따라가는 맹과니가 되어버린 지금의 내 모양새도 그리 자랑할 것은 못 된다. 새끼 끼고 누울 아파트 한 칸 마련한 것으로 자족의 성을 쌓아버린 내가 누구더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젊은 날의 그 외침을 화석처럼 눌러놓고 이제는 꺽진어미로 살아가는 너, 생업 터를 지키며 아들 둘에 몰두해온 너라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려나. 가제 뒷걸음이나 게 옆걸음이나 뭐가 다르겠냐고.

바람이 불어, 여전히. 그리고… 길바닥에는 푸른 잎의 비명과 주검도 여전하고. 하지만 나는 일터에 가야했지. 계속 차를 움직여야 했다는 거지. 바람이 잎들을 찢었다지만 내 차의 바퀴도 그들의 몸을 으스러뜨리며 지나가야 했어.

그러고 보면 나도 갈가위나 불가사리가 아니라고 온전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는 나에게 밟히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또 설령, 그리고 다행히 갈가위나 불가사리가 아니 되었다 해도 마음이 가벼울 수는 없을 것 같아. 지난날, 목이 터져라 외치며 의기양양 이루어온 것들을 물려줄 것 없이 다 털어먹은 우리인 것을 아니까. 지난날, 그토록 간절히 허물고자 했던 그 두터운 옹벽의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인 것도 너무 잘 아니까.

엽아, 피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바늘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빼지 말아야겠다. 통증이라도 느껴야, 그래야… 그나마 사람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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