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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직장인은 자기 회사를 비난할까?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레시피

왜 직장인은 자기 회사를 폄하할까?     


“지금 다니시는 회사, 어떤가요?”

이렇게 물어보면 사실 답하기가 애매하다. 질문을 하는 이조차 헷갈릴 정도로 포괄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게 일하기에 어떠냐는 건지, 분위기가 어떠냐는 건지, 혹은 급여수준이 어떤지 등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곧잘 대답을 한다. 인간의 특별한 재능 중 하나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이니까.     


전직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하다보면 알게 되는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의외로 자신이 다니는 직장을 폄하하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평생을 회사에서 준 월급으로 남보다 훨씬 부유한 삶을 산 이들조차 퇴직하면 “어떻게 회사가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비난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배신감이란 게 이해도 가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굳이 그렇게 비난할 필요까지야...’같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떠나온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회사 어떠냐”는 후배들의 물음에 대한 재직 선배들의 긍정적인 대답은 기껏해야 “돈은 잘 나와” 정도다. 

대개는, 

“기업문화 엉망이야. 비전도 없고...”, 

“야근은 원 없이 할 수 있어. 죽어라고 일시키는 데야”, 

“딴 데 가라. 여기는 권하고 싶지 않다” 

등등 기를 꺾는 말들을 쏟아낸다.

물론 그것만이 진심은 아니겠지만, 회사에 대한 평가 멘트를 남기는 모 앱 서비스 등을 보면 온갖 혹평이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꿈꾸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토록 꿈에 그렸던 직장들조차 왜 재직자가 되면 자꾸만 폄하하게 되는 것일까?     

농담처럼 후배들에게 했던 말이 있다. “모든 재직자는 퇴직을 꿈꾸고, 모든 퇴직자는 재취업을 꿈꾼다.” 

일의 속성 상 회사라는 틀은 어떤 식으로든 일정부분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구속을 전제로 한다. 그에 대한 반대심리로 

구속을 벗어나고픈 본능적인 인간의 욕구가 첫 번째 근원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람에 따라 조직이라는 안정감을 선호하는 이도 많지만, 문제는 그런 이들조차 일일이 통제받는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 일을 하다보면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자신조차 설명하기 모호한 이유로 때려치우고(물론 당시에는 나름대로 절실했겠지만), 이후에는 그 정도 수준의 회사를 다시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아주 빠르게 인간은 많은 것을 바꾼다


두 번째 이유로 우리의 놀라운 적응력도 한 몫을 한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회사도 막상 어느 순간 우리의 일상이 된다. 대개 입사 후 감격은 6개월쯤이나 갈까? 그때부터 선망의 대상은 일상의 불평을 늘어놓는 곳이 된다..  우리의 적응력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이런 부작용도 있다.     

내가 아는 한 익숙한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거의 성인의 반열에 든 사람이다. 여러분의 주변에 물과 공기에 감사하고,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따뜻한 날씨, 부모의 관심에 감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온다.

첫 월급의 감사함은 몇 달 만에 사라지고, 당연한 모든 것이 그렇듯 고마움보다 일상의 지루함, 불편함이 먼저 눈에 다가 오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기대 이하의 회사를 만나는 것은 쉽다



세 번째는 실제로도 불편한 회사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첫 번째나 두 번째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기인함이라면 세 번째는 가장 현실적이고 대중적인 것이기도 하다.

맞다. 돈이든 근무환경이든, 혹은 사람이든 직장인은 곧잘 회사 환경 때문에 좌절하고 냉소적이 된다.

두 번째에 얘기했던 꿈에 그리던 회사가 그 정도라면, 세상과 타협한다는 기분으로 들어간 회사, 혹은 마지못해 ‘놀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들어간 회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내 이럴 줄 알았어. 역시 여긴 아니었어.’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자신의 회사에 부정적인 선배들이, “어이구~ 어쩌려고 이런 곳에 들어왔냐?”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라도 던지면 그때부터 ‘구체적인 탈출계획’까지 짜게 된다.

거기다 마음을 주고 따를 수 있는 좋은 상사는 어떤가? 많은 경우 ‘3대에 걸친 조상의 덕업’ 쯤은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존재다. 솔직히 그보다는 ‘어디서 이런 막장 캐릭터가 존재했을까’ 싶은 상사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된다.     

내 탓이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건, 또는 오롯이 회사의 문제건 간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회사는 폄하되기 쉽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전 글에서 나는 회사와 직장인의 관계를 ‘연애하는 관계’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링크:https://brunch.co.kr/@gagadu/10)

이건 마치 연애하면서, 혹은 옛 연인과 헤어진 후 그 사람을 까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마음...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 인간이지만, 또한 그럼에도 옛 사랑에 대한 비난을 보는 마음은 좀 씁쓸하다.      


서로 안 맞아서 헤어졌건, 혹은 처음부터 그 사람을 잘못보고 선택했건 간에

 ‘정말 그 관계에 내 몫의 책임은 전혀 없었던 것일지’를 한번 떠올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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