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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사순 Jul 10. 2022

일시정지

나에게 주는 시간


"선생님, 진짜 노랗다!!!"


" 술 많이 먹어서 그렇겠지."

" 술 많이 마셨나? 누구랑??"


이직하고 한 달 18일 만에 두피부터 발끝까지

단무지 색 인간으로 변신했다.


어딘지도 잘 모르는 시골로 이사 와서 배달음식 배달 아저씨와 정다운 문자를 나누고 지냈는데, 단무지 인간이라니.

매운라면엔 단무지!

학생들 교육일정도 숨 쉴 틈 없이 빡빡하건만..

나는 겨우 내 몫을 하게 되었는데, 민폐인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혈액 - 초음파 - CT 촬영을 기다리면서

훌쩍훌쩍 이 엉엉 이 되도록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회사 보건담당이 말해주길

증상이 없는 황달은 더 위험한 것이라고 해서

진짜 죽을병은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단무지를 쥐어짜듯이  두 시간 정도 고민했나 보다.


간수치와 황달수치가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상한 건강보조제 다이어트 식품을 먹었다고 혼내는 담당의사와 운동을 해야지 이상한걸 왜 먹냐는 간호사들을 보며 참... 어쩔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다.


황달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고

간독성보다 담낭과 담도를 막은 돌들이 원인일 것 같아

회진하는 담당의사에게 질문하니 왜 물어보냐며..

원래 환자가 이해할  있도록 각종 수치와 여러가지 발병의 원인 알려주는 것이 의사의 도리가 아닌가??



대학병원을 알아보던 중 컨디션이 좋지 않던 날,

덜컥 겁이난 모양을 내게 들켰지만 애써 침착하게

소견서와 CT사본을 주며 대학병원으로 어서 가라고 한다.

엄마왔다. 막어 막어 막어... 자는척 해

일단 퇴원 집을 싸서 차에 싣고, 집으로 와서 애들 챙기고

치우고 또 대학병원에 입원할 준비물을 챙겼다.

가까워서 집에 매일 와볼 수 있었고, 간수치는 처음의 절반으로 떨어졌지만, 컨디션도 좋지 않고 약간 열이 났다.


몽롱하지만 정신 차리고 운전대를 잡아 40분을 달려갔다.

주말 응급실은... 정신없고 바쁘고 시끄럽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검사하고 기다리고 검사하고 기다리고.

8시간 만에 응급의학과 담당의사의 차분하고 친절한 설명을 듣고 통증이 없는 심한 황달은 흔하지 않은 케이스라며

종양이나 암이 아닌지 검사하자고 했다.

나는 놀라서 눈물이 차오르는데...

수많은 응급실 대기자 중 옆에 누워있던 아주머니가

길고 긴 열 칸으로 연결된 기차 같은 방귀를 크게 뿜어대서 어이없는 웃음과 짜증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도 어이없는 아주머니의 방귀처럼

종양이나 암 따위는 없었다.


화장실과 소음에 민감한 나였는데,

2인실로 배정되어 밤 11시에 입원실에 누웠다.

옆 침대 할머니는 춥다며 에어컨을 꺼달라 하셨고

그 덕분에 찜질방 체험을 하다가 새벽 5시에 일어나

편의점 구경을 하고 휴게실에서 숏다리와 사과를 먹는 시간을 가지며 행복했다.


급하게 진행된 ERCP 시술은 20분 만에 끝난 것 같은데

엉엉 대고 울면서 비몽사몽 중에

폭풍 질문을 해댄 것이 생각난다.

마취한 거예요, 안 한 거예요? 돌 나왔어요? 몇 시에여? 엉엉엉.....


왜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뱃속도 후벼대는 것 같고 위내시경보다 굵다는

담도내시경이 나오는 때에 깨어나서 좀 괴로웠나 보다.


코와 연결된 관으로 2리터는 담즙을 빼낸 것 같다.

뿜어져 나오는 담즙을 보며, 나 자신이 웅담을 위한 곰처럼 느껴진 건 나뿐이겠지...


평택에서 익산으로 급히 내려온 작은오빠는,

먼저 퇴원한 집 근처 종합병원에 내 회사에 제출할 진단서를 떼러 갔다가 내가 어떻다고 하냐고 물어보는 의사를 한 대 후려팰 뻔했다고 한다.

시골마을의 종합병원 의사도 소신껏 진료하고, 원인을 잘못짚었을 텐데, 대학병원 담당의사는 내게 물었다.


"왜 이제 보냈대요? CT 보고 알았을 텐데?"

" 다이어트 약이 간독성 원인이라고.. 풉...."


강아지들을 챙겨주러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너무 보고 싶고 걱정이 되었다.

담당 의사는 개밥 줘야 하니 어서 퇴원하고

다시 입원해서 담낭도 절제하자고 했다.

담낭에서 담도로 돌들이 내려오니

담낭에서 쉬고 있는 청심환을 닮은 돌도 제거해야 한다고.

검색해 본 바, 담낭의 돌은 돌만 빼낼 수가 없어서

담낭째 절제해야 한다고 한다.


뭐, 사는데 지장은 없겠지만,

좀 갑작스러운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한 번 시키면 삼일은 먹어야 다먹지.

집이 이렇게 평온하고 안락한 곳일 수가 없다.

족발에 해물파전도 시켰다.

물냉면도 한 그릇 말고, 외계인 엄마 맛 아이스크림도 쿼터로 한통 사고

조각 케이크도 샀다.

이제 쓸개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빠른 회복을 위한 급속 충전을 해본다.

빨래 세판, 저8개 모두 세탁...누워야겠어.


의료시스템도 병원도 의사도 별로 믿지 않는

전직 간호조무사지만,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빠르고 정확하긴 하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물론 입원환자 수당 챙겨가며,

밭매다 온 아줌마 같은 사람으로 쳐다보면서

무식하게 보고 황달 이틀째인데 왜 왔냐며....

내 담낭 담도의 돌 사이즈와 개수를 물어보면

그건 왜 궁금하냐고 하고 이상한 다이어트 약이나 먹지 말라고 놀림감 만들고...

담도의 돌은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고 제거하면 또 생기기 때문에 열나고 아프지 않으면 건드리는 거 아니다고.

그래서 황달수치를 3배 수로 올려준 다음에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낸...


아픈 사람 물로 보고 먹이는 의사도 가끔 있다.


깡깡 시골 속의 도시 느낌 카페를 찾았다.

이번 '쓸개와의 이별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티라미슈 한 조각을 놓고

책도 읽고 뜨개질도 하면서

일시정지를 누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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