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구슬
2020.3.28
큰 캔버스에 여자를 그렸다.
정확히 말하면 뒷모습이다.
머리는 단발이 아니다. 긴 머리다.
어쩌면 나만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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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10
나무 아래 캠핑 의자가 놓인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들고 나무를 찍었다.
조금 식상한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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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16
약이 하나 있다.
색도 흰색이다.
친구가 추천해 준, 수면 보조제다.
멜라토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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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17
야채를 다듬고 있다.
청경채
계란이랑 볶으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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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18
거실에 작은 선풍기 하나.
그 뒤로 작은 베란다.
그 뒤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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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22
청레몬 (라임) 반 조각.
예뻐서 찍었다.
라임보다 청레몬이라 부르는 게
이름이 더 이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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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29
마스크를 끼고 걸어서 카페에 갔다.
카페에서도 마스크를 쓴 채로
나를 찍었다.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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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7
마스크를 끼고 아이랑 걸었다.
사진은 다 지웠지만
다른 기억이 남아 있다.
집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계속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
기분에 놀아나지 않으려고
무작정 나가서 걸었다.
매일.
혼자 걸었다.
아이와도 걸었다.
아직 학교는 휴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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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8
걸어서 카페에 갔다.
점점 더 멀리 걸었다.
오래 걸었다.
조금씩 문을 연 가게들이 보인다.
이 동네가 원래 이런 곳이었나 싶다.
구석구석
눈에 예쁘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찍었다.
버스 정거장 의자
화장실 앞 의자
파란 의자
빨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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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10
집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카페에서 셀카를 찍고
집 앞에서 산책을 했다.
꽃과 함께 찍은 마스크 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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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30
아직도 매일 걷는다.
점점 더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연다.
그래서 더 많이 보인다.
이 카페는 문구도 같이 판다.
직접 만든 문구들이 많다.
2층도 있다.
공간이 조금 특별하다.
치앙마이에
이런 카페가 많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사진으로 남겼다.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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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12
플레인 요구르트를 먹는다.
꿀을 넣었다.
꿀을 넣으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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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13
걷다가 카페를 발견했다.
커피를 마셨다.
조금씩 다시 열리고 있다.
지나가던 곳이었는데
오늘에서야 보였다.
구슬 놀이를 한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지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원하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일단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