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인문학 왜? 배워야하나요?
"우리는 순진무구함(비폭력)과 폭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다. - 메를로 퐁티 -"
사람에게만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나서 세계 경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처럼요. 글로벌 시대라서 더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살수 없고 무언가의 희생(생명)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존재가 모두가 그렇습니다.
"꽃 한송이를 보면 꽃이 아닌 여러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을 만지면 구름을 만지는 것입니다. 꽃에서 구름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구름을 없애면 꽃은 곧바로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꽃에서 떠다니는 것을 보기 위해 시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꽃에서 태양을 만질 수 있습니다. 만약 태양의 요소를 돌려보낸다면 꽃은 시들고 맙니다. 그리고 태양은 마찬가지로 꽃이 아닌 요소입니다. ... 그리고 흙이 있고 정원사가 있지요. - 팃낙한"
또한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폭력을 행사하고 동시에 폭력에 노출됩니다.
다시 말해, 오늘 하루 내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섭취한 생명만 보더라도, 나를 위해 생명을 희생한 수 많은 식물들, 동물들, ...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의 희생과 나와 누군가의 폭력으로 나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많이 가지고 많은 것을 누린다는 것은, 더 많은 희생 더 많은 폭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득권이 있다면, 가지려고만, 자랑하려고만 하지말고, 나누고 함께 살, 그리고 최소한의 폭력으로 살 생각을 해야합니다. 행여나 사기라해도 길을 걷다 적선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고, 가물어 쓰러져가는 길가의 들풀을 보았다면, 쓰다듬어주며 '이쁘다', '아름답다'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사람의 자취를 배운다는 것.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누리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가며 알려주고 보여주고 사는 것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을 해야합니다.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FYI.
#인문이 뭐지? 인문학이 뭐지? 왜 배우지?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정리해보았죠. 아마 7년전에 썼던 글이라 다시 고쳐서 올립니다. 여전히 이 글대로 살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