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를 보고, 일상보단 인생을 살기로 했다.
2025. 01.31
영화 퍼펙트 데이즈 (2024)
감독 빔 벤더스 / 출연 야쿠쇼 코지
줄거리 : 도쿄 공공시설 청소부의 잔잔한 일상 속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닥친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힐링 영화라 말한다.
영화 초반부, 공공시설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히라야마의 하루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걸 왜 그렇게 열심히냐”는 후배의 핀잔에도 묵묵히 일을 하고, 틈틈이 나무와 햇살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쉬는 날이면 중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빈티지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듣는 게 취미인 이 남성의 하루.
반복되는 일상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고요하고 평화롭고 어쩌면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 잔잔한 일상을 일렁이게 만드는 사건들이 생긴다. 가출한 조카 니코의 등장, 동료 후배의 갑작스러운 퇴사, 단골 술집 사장의 전 남편과의 만남. 작은 파동들이 모여 파도를 이루듯 주인공 히라야마도 우리가 알던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목소리 한 번 듣기 귀하던, 표정의 변화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던 히라야마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미소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표정으로 출근길에 오르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내게도 회사의 부도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때가 있었다. 이 시절 내 마음도, 인생도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내 일상밖에 없었다. 눈을 뜨면 한강을 달렸고, 러닝 후 집에 오는 길에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사 온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했으며, 매 끼니는 좋은 재료로 직접 만들어먹었다. 독서, 뜨개질, 꽃꽂이와 같은 취미로 시간을 보내다 저녁엔 매일 헬스장에 들러 다시 땀 흘리며 운동했다. 분명 그 시절 나의 일상은 충만했고 이런 게 행복이라며 자위했다.
되돌아보니 당시의 불안과 아픔을 평화로운 일상으로 잘 포장했는지 모르겠다. 반복되는 일상의 행동 하나하나를 벽돌처럼 켜켜이 쌓으며 방어벽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하나라도 깨어지는 날에는 괴로움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픔도, 슬픔도, 불안도 잠시 저 뒤편으로 미뤄뒀을 뿐 언젠간 마주해야 할 나의 몫이었다.
무엇이 더 행복한 삶일까. 무엇이 더 인간다운 삶일까. 히라야마의 일상은 평화로웠지만 인생은 진정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 안온한 일상 속의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히라야마는 엔딩씬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상처받은 히라야마에게 한 번 더 상처받을 기회가 생기길. 희로애락을 느끼며 한 번 더 인생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길 용기가 생기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