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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하 Nov 05. 2020

콘텐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실패'는 가장 좋은 콘텐츠


  어릴 때부터 나는, 나만의 '이야기'가 갖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초등학생이 주인공인 소설을 끄적거렸고,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등학생 때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감정을 '시'라는 형식으로 써보기도 했다. 대학생 때는 한창 '싸이월드'가 열풍이어서 일기장에 그날그날의 상념들과 감정을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내 일기장인데, 남이 볼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요상한 싸이월드의 공간 안에서 나는 음악과, 사진, 일기장을 통해 나의 센티멘탈한 감상을 표현하는데 푹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사적인 끄적거림으로, 짜임새 있는 하나의 '콘텐츠'는 아니었다. 그래서 '작가가 꿈이요'라고 입 밖으로 내뱉어본 적도 없고, 나 스스로도 '작가가 야지'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 먹고사니즘을 위해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글 쓰는 일과 더더욱 멀어져 버렸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문학'이나 '독서' 등의 과목을 가르쳤는데, '문학의 재미에 빠져보자!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교과서 이외의 책은 거의 읽지 못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콘텐츠'는커녕 일기조차 끄적거릴 여력이 없는 직장 생활이 이어졌다.


 '유튜브'가 열풍일 때는, 영상편집에도 관심이 있던 터라 유튜버에 도전해보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글을 쓰는 법도 알고, 영상 편집도 할 줄 알았지만 정작 이야기할 '꺼리'가 없다는 것은 이야기가 갖고 싶은 내게 있어 거의 고문이었다.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고, 나는 그냥 나에게 주어진 일상인으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이야깃거리는 예상외의 곳에서 생겨났다. 그것은 바로 지겹게만 느껴지던 나의 '일상'이었고,  성공적인 일상도 아닌 '실패로 가득한 일상'이었다.

 어렵게 얻은 교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힘들었고, 나의 적성에 맞지 않기에 '퇴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브런치 북' 공모전을 알게 되었고, '퇴사'에 대한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키보드를 두드렸다.

 한 편, 한 편 글이 쌓일 때마다 나의 감회는 새로웠다. 내 안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는지 몰랐다. 신규 때  겪은 고통과 실패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 다 잊힌 줄 알았는데, 글을 쓰는 동안에는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덮어 두었던 생각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글을 쓰는 동안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아다. 머릿속에 엉켜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퇴사'에 대한 나의 의지는 확고해져 갔다. 나는 비록 직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 덕에 '퇴사 일기'라는 하나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 '실패'가 나의 첫 번째 콘텐츠가 된 셈이다.  




 '글'이란 필연적으로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고,  '과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과거의 일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맺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별을 하기 전엔 애인에 대해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지만, 이별을 하고 나면 '그 나쁜 놈'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퇴사를 결심하기 이전에 직장에서 겪는 고통은 그냥 고통에 그쳤지만, 퇴사를 결심하고 나니 직장 생활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그것이 바로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 일기'(*브런치북) 라는 '실패' 콘텐츠가 된 것이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나의 첫 번째 이야기가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실상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매일매일 패배하고 있으므로, 누구나 자기 안에 '실패라는 콘텐츠'를 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지만, 실상 내 인생에 켜켜이 쌓여가는 것은 하루하루 겪는 실패들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얘기해본다. 브런치 작가들처럼, 유튜버들처럼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콘텐츠를 쉽게 찾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많이 '쌓여있는 시간들'을 꺼내어 들여다보라고. 그게 꼭 남들에게 자랑해 보일만한 성공의 시간들일 필요는 없고, 실패의 순간들이어도 괜찮다고. (사실 사람들은 남이 성공한 얘기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고, 실패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재밌어한다.)

 

 나쁜 연애에 빠져들어 마음고생했던 이야기, 진로 문제로 오랫동안 방황한 이야기, 직장 상사가 나를 괴롭히는 이야기, 육아의 어려움, 이혼한 이야기 등 일상적인 주제라도 상관없다. 어떤 주제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겪어 왔는가가 중요하다. 시간이 오래될수록 많은 사례들이 쌓였을 것이고 많은 생각과 고민, 그리고 깊은 깨달음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콘텐츠란 일관된 분야에 대한 꾸준한 시간 쌓기의 결과물이다.


 그동안 일관된 분야로 시간을 쌓지 못했다면 앞으로라도 그렇게 하면 된다.


   첫째, 한 분야에 몰하기

   둘째, 끊임없이 시간을 쌓아가기

   셋째, 연구자의 자세로 생각하고 고민하기



Anyone who has never made a mistake has never tried anything new.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거창한 도전이나 실패도 좋지만, 그냥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 자체가 모두 '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인생의 매 순간을 '도전'처럼 살아낸 사람이라면, 열심히 보내온 그 시간 속에 분명 '콘텐츠'가 고요히 파묻혀 있을 것이다. 이제, 그것을 꺼내어 올리기만 하면 된다. 첫 번째 글을 쓰다 보면, 못다 한 이야기가 두 번째 글로 건져 올려질 것이다. 첫 번째 영상을 찍으면, 그것을 준비는 과정에서 생긴 아이디어와 자료들로 두 번째 영상을 구상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한국의 속담은, 참말인 것 같다.


*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만들어 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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