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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Nov 11. 2023

서울의 봄

9시간 때문에 10년이나 늦춰진 봄

시나리오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영화와 드라마에 관심이 커졌다. 그러다 보니 시사회나 gv 행사가 sns에 뜨면 신청해 놓고 보는데......(이럴 때는 일 벌이기 좋아하는 enfp 기질 발동!)


전시를 한창 포스팅할 때는 그렇게, 그렇게 된 적 없던 이벤트가 영화에서는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되었다! 심지어 최초시사회에 gv 행사까지 함께 하는 이벤트였다.


그렇게 당첨된 이벤트는 김성수 감독의 신작, '서울의 봄'이었다.




김성수 감독은 '아수라', '감기', '무사', '태양은 없다', '비트' 등 엄청난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이다.


주로 남성들이 환호할만한, 남성향 영화를 다루는데 '서울의 봄'은 그런 남성들의 마음에 불을 활활 지피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1979년 12월 12일.


흔히 1212 사태, 군사 쿠데타라고 부르는 이 사건을 다루는 영화로, 세상 멋지고 연기 잘하는 남자배우들이 총출동한다.


70년대의 군대 모습과 그 속에서 남자들의 모습을 아주 잘 그려낸다. 전두광과 그를 따르는 하나회의 군인들의 모습에서는 전두광의 깡패 두목 기질(?)과 흔히, 엘리트라 불리는 육사 출신의 남자들이 보이는 찌질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에 맞서는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 올곧은 성품을 가진, 우리가 바라던 '장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영화 말미에 광화문으로 향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올려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의 캐릭터가 그런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다.


전두광과 이태신. 두 사람이 대립하는 모습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중심 맥이 아닐까 싶다.




1. 탐욕의 왕


GV에서 김성수 감독은 황정민 배우에게 원한 이미지가 바로 '탐욕의 왕'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씬 중 하나인 '어둠 속에서의 하나회'가 있다. 은밀한 일을 진행하기 위해 불을 끄고 쿠데타에 대한 자료를 공유하는 장면이다.


거기서 전두광의 카리스마가 폭발한다. 그 카리스마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을 따르면 콩고물이 떨어진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탐욕의 왕, 어쩌면 악마의 모습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짐승의 모습 같기도 하다. 사람이 타고난 본성을 건드리는 그 모습이 전두광이라는 캐릭터를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보이게 만든다.


2. 고고한 선비 


만약 눈앞에 전차와 탱크가 자신을 향해서 달려온다면, 그 앞을 홀로 막아설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차라리 죽어서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 속 이태신은 그렇게 한다.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행주대교에서 그 앞을 막아선다.


그 모습이 참 고고해 보였다.


오랜 세월, 우리 역사를 지킨 수많은 영웅들이 어쩌면 저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정의를 지키는 모습. 옳은 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할 각오를 하는 그 모습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싶다.


3. 옳은 일의 끝은 왜 죽음일까.


실제로 12.12사태에 진압군 측에서 죽은 사람이 두 명 있다. 육군본부 헌병감인 김진기 준장(극 중 김준엽)과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극 중 오진호)이다.


영화 속에서도 김준엽은 모두가 버리고 떠난 육군본부를 끝까지 지키다 죽게 되고, 오진호는 특전사령관을 지키다가 동료가 쏜 총을 맞고 죽는다.


실제로도 우리는 그릇된 일을 할 때보다, 누가 봐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어려움을 더 겪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옳은 일에는 죽음이 더 가까이, 더 쉽게 다가간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잘했다고 칭찬의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며 울분이 쌓인다.


gv에서 김성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12.12사태의 반란군들이 절대로 역사에서 용서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걸 부각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마도 영화에서 이 둘이 죽은 건, 그런 반란군을 더더욱 용서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함일 테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죽은 두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4. 안 되면 되게 하라?


특전사의 구호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지인 중에 특전사가 있다 보니 이 구호가 특전사의 구호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영화에서 반란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판세를 뒤집는 건 바로 특전사의 개입이다. 물러나는 척 하지만, 몰래 강으로 보트를 타고 행주대교 아래로 가서 초소를 기습한다. 그런 후에 그들은 서울로 진입한다.


그걸 보면서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특전사의 구호가 떠올랐다. 과거의 나는 그 구호를 참 좋아했다. 특전사의 강인한 정신을 보여주는 것 같고, 정말로 불가능한 일도 전부 이뤄낼 것 같은 든든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 지인에게 아주 거하게 뒤통수를 맞았다. 십 년을 믿어온 사람이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내 등을 맡겨도 될 사람이라 여겼다.

그런데, 누구보다 나를 지켜줄 것 같았던, 항상 내 편일 것 같았던 그 사람의 배신에 사람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겨버렸다.


그래서일까, 영화에서 특전사로 인해 판세가  바뀌는 모습에 기분이 묘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그 말이 마냥 좋은 말은 아니구나, 정말로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그게 정의와 어긋난다 할 지라도) 목표를 이뤄내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5. 배우의 연기와 매력이 주는 효과


결국 이태신 장군은 전두광을 제압하지 못한다. 바리케이드에 갇힌 그는 전두광을 앞에 두고, 그의 승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대사를 한다. 무척이나 차갑고 담담하게 말이다. 그리 길지도 않다.


그러나 대사 한 마디에 전두광은 잠깐이나마 흔들린다. 그의 승리는 완벽한 승리가 아니라는 걸, 누군가는 그의 승리를 부정한다는 걸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부채감을 안겨준다.


방작원에서 시나리오를 과제로 써서 냈을 때, 선생님께 크게 혼났다. 왜냐하면 내 대본의 남자주인공은 과묵하고 말 없는 흡혈귀 캐릭터야 매력이 사는데, 말과 행동이 쓸 때 없이 너어어어어무 많았기 때문이다.


영상의 매력은 '행동'과 '눈빛'에 있다. 대사가 없더라도, 캐릭터의 움직임과 눈빛만으로도 생각을 충분히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배우는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얼굴과 목소리, 몸의 형태를 갖춰야 한다.)


이태신 장군의 대사는 짧지만 묵직하고, 그 대사를 할 때의 정우성 배우의 눈빛과 목소리는 관객 모두가 그의 편에 서서 전두광을 역겹게 느끼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  


이 영화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봤으면 좋겠다. 겨우 9시간. 짧다면 짧은 그 시간으로 인해 1980년대의 대한민국은 최루탄과 핏빛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gv에서 김성수 감독은 "나의 의구심과 젊은 관객들의 호기심이 맞닿는, 그런 원대한 희망을 갖고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한다.


다시는 그런 역사가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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