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이 발목을 잡았다
글쓰기의 기술은 천차만별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2013년만 하더라도 학원이 있는 것도, 대학에 웹소설을 가르치는 학과가 있지도 않았다. 인소가 자연스럽게 웹소설로 승계하는 분위기였고, 그러다 보니 웹소설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어떤 것도 없었다.
그렇게 따로 뭔가 교육받지 않고 썼던 글이다 보니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인소에 빠져 사느라 대학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망했지만... 뭐, 고등학생 때 인소를 보고 쓰던 그 시간에 자연스럽게 웹소설 글쓰기를 체득했으니 그때의 시간을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다.
2021년에 웹소설 강의를 만들기도 했지만, 사실 만들면서 '이걸 강의를 한다고? 도대체 왜? 그냥 쓰면 되잖아.'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만큼 웹소설을 쓰는 게 나한테는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웹소설 일을 하다가 드라마 제작사 대표님을 알게 되었다. 대표님은 대본을 배우라고 했고, 나도 좀 더 색다른 방향의 글쓰기가 궁금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합평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대본에서 웹소설 느낌이 난다는 것이었다.
즉, 이건 대본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게다가 대표님과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중에도 계속 들었던 피드백이 "작가님 대본에서는 웹소설 느낌이 나서 이거는 못 써요."라는 말이었다.
솔직히 황당했다. 웹소설을 쓴 지 10년이 되었으니, 나의 문체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업계 상황은 다르다. 웹소설과 대본화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는 작가를 원한다.
근데 웹소설은 웹소설대로 잘 써야 하고,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대로 잘 써야 한다.
웹소설을 쓰면서 한 번도 글쓰기 기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대본을 쓰다 보니 두 분야가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어쩌랴, 계속 살아가려면 업계가 요구하는 인재가 되어야지.
하지만 어쨌든 시나리오도 글쓰기 아니던가. 웹소설을 쓰면서 글 못 쓴 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대본 작업을 하면서는 수시로 혼났다. 내가 이딴 대접을 받으면서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싶을 정도로.
글을 쓰면서 나의 글쓰기에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고, 한 번도 원망해 본 적 없던 생각들에 잠식되었다. 어쩌면 나의 오만함을 누르고자 하는 하늘의 뜻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화가 났다.
웹소설이 내 발목을 잡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하도 웹소설 작가 글 같다는 소리를 듣다보니 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된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내가 타고난 게 이 모양인데 어떡할건데. 이렇게 된달까..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져서 이제는 이 공부로 내가 배우는 것이 많기를, 어쩌면 웹소설을 쓸 때 대본에서 배웠던 것들을 써먹어서 좀 더 좋은 웹소설을 만들 수 있기를, 내 글이 예전보다 훨씬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