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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짓

한 팀만 15년 응원한 팬의 이야기,《랩터스》(해준, 가익가)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청개구리가 있었어. 엄마 청개구리가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청개구리는 서쪽으로 가고, 산으로 가라고 하면 물로 갔대. 세월이 흘러 엄마 청개구리는 자신이 죽으면 강가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는데, 자식이 반대로 할 줄 알아서 그랬대. 엄마 청개구리가 세상을 떠나자 청개구리는 불효했다는 마음에 처음으로 엄마 말을 따랐대. 그 후 청개구리는 비가 오기만 하면 우는데,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걱정해서래.


   나의 아버지는―지금은 담배를 태우지 않지만―골초였고, 술주정이 심했으며, 타인의 의견을 잘 듣지 않았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없어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고 나에게 좋은 책을 권한 일도 거의 없다. 그리고 자식을 타인과 비교 대상으로 삼을 때가 많았다. 여섯 살쯤 아버지를 따라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갔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회를 사주었는데 거의 먹지 못하자 ”사촌 동생은 이것저것 잘 먹는데 왜 너희는 먹지 못하느냐”라며 주변 사람이 신경을 쓸 정도로 우리에게 핀잔을 주었다. 지금은 회가 없어서 먹지를 못하는데 말이다.


   나는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고, 술은 마시지만 절대 주사를 부리지 않으며,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많다. 주변에서 역마살이 끼었다고 말할 정도로 여행을 가고 대학생이 되어 책을 찾으러 도서관을 돌아다녔다. 타인에게 비교하는 말을 하지 않고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어릴 때 청개구리 이야기를 좋아한 이유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사는 것이 인생 최대 목표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따라 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팝 앨범을 수백 장 모아놓았고 우리는 품격 높은 음악을 들으며 자랐기에 동생은 그 자양분으로 작곡가를 꿈꾸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틀어놓은 스포츠 중계에 자주 넋이 나가 있었다. 네 살쯤이었다. 아버지와 야구를 보다가 물었다.

   “사람들 뒤에 빨간색 불 옆에 글자가 뭐야?“

   “영어로 ‘에스’라고 말하고, 스트라이크라는 뜻이야. 따라 해 봐.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버지는 다른 야구 규칙들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모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에게 따스함을 느꼈다.


1990년대 LG 트윈스 에이스 김용수 (왼쪽 / 출처 : LG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 에이스 박동희 (오른쪽 / 출처 : 경남도민일보)


   1991년 한여름의 어느 일요일 저녁, 줄무늬 유니폼 LG 트윈스와 스머프 유니폼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러 아버지와 잠실 야구장에 갔다. 경기 전 타격 연습을 지켜보다가 귓가에 팝송이 흘렀다. 듀엣곡이었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누구지… 조 카커?”라고 묻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록빛 다이아몬드와 여름 저녁노을을 머금은 풀냄새, 배트에 닿은 야구공이 내는 경쾌한 파열음, 그리고 조 카커와 제니퍼 원스의 <Up Where We Belong>이 화음을 이루는 잠실 야구장은 천국 같았다. 내가 야구와 사랑에 빠져버린 이 날이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눈 아름다운 추억일 줄은 몰랐다.


   청개구리 심보는 세상을 향한 나의 유일하면서도 소심한 반항이었다. 박스오피스 1위 영화, 시청률 1위 드라마, 베스트셀러 책은 거르는 대신, 흙 속 진주 같은 노래와 책을 찾아다녔다. 과자나 라면도 사람들이 외면하는 제품만 골랐다. 스페인어를 배운 이유도 주위에서 아무도 배우지 않아서였다. 나의 청개구리 기질은 내가 좋아하는 인기 없는 가수가 인기를 얻을 때 나타난다. 2008년 아델(Adele)의 데뷔 앨범 《19》 을 듣고 좋아했는데 국내에서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아델 팬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2집 《21》 부터 아델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자 몇몇은 아델의 골수팬처럼 굴었다. 나만 좋아하던 가수를 빼앗긴 느낌에 그때부터 아델 노래를 찾아 듣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많은 이들이 반응하는 것에 등을 돌리고 나만이 소유할 대상을 쫓았다.


   랩터스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청개구리 짓 덕분이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청개구리 짓을 하도록 영향을 끼친 아버지 때문에 랩터스를 응원하는지 모른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했지만 아버지가 세운 기준에 영원히 맞추지 못하리라 믿었기에 나는 ‘제2, 제3의 청개구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나처럼 승리가 다가오면 오히려 불안해하고 간신히 한 번 이기면 흥분해서 연패에 빠지는 랩터스를 만났다. 누구보다 승리에 목말랐지만 랩터스도 나도 막상 그것이 다가오면 믿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무언가가 원하는 것이 있거나 나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가 아닐까 의심했다. 이렇게 가끔 청개구리 심보는 마음속에 새겨놓은 ‘패배’라는 주홍글씨를 입증하는 데 쓰였다. 독립해 따로 사는 이후부터 아버지가 나를 더는 비난하지 않았지만 이제 내가 나에게 “어차피 해봤자 안돼”라고 말했다.


나는 ‘제2, 제3의 청개구리’를 찾아다니다가 승리가 다가오면 오히려 불안해하고 간신히 한 번 이기면 흥분해 연패에 빠지는 랩터스를 만났다.  (출처 : yahoo news)


   그래도 나는 청개구리 짓을 멈출 수 없다. 나에게 청개구리 짓은 스스로 속박해온 삶에서 찾은 유일한 낙이다. 타인이 향하지 않는 길로 향하는 청개구리식 행동은 내가 누구인지 탐구하는 기회이다. 평생 주변에 휩쓸리고 또 존재감도 없지만 정반대 행동은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순간을 언젠가 마주하리라는 희망과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지기 싫어서 지고 우승하고 싶어서 우승하지 못하는 랩터스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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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터스》 입고처


<서울·경기>

책방비엥 (은평구) | 온라인 오프라인

다시서점 (강서구) | 온라인 오프라인

올오어낫싱 (금천구) | 온라인 오프라인

프루스트의 서재 (성동구) | 온라인 오프라인

무엇보다, 책방 (송파구) | 온라인 오프라인

커넥티드 북스토어 (종로구) | 온라인 오프라인

이후북스 (마포구) | 온라인 오프라인

인덱스 (광진구) | 오프라인

스토리지필름앤북스 해방촌 (용산구) | 오프라인

이문일공칠 (동대문구) | 오프라인

서로의공간 (경기 구리시) | 오프라인


<부산>

*나락서점 (부산 남구) | 온라인 오프라인

*주책공사 (부산 중구) | 오프라인

  

<전북>

에이커북스토어 (전주 완산구) | 온라인 오프라인

조용한흥분색 (군산 미원동) | 오프라인

   

<전남>

책방심다 (순천 조곡동)  | 오프라인


<대구·경북>

*고스트북스 (대구 중구) | 온라인 오프라인

*책봄 (구미 원평동) | 온라인 오프라인


<대전>

*해윰책방 (대전 서구) | 오프라인


<강원>

*깨북 (강릉 교동) | 오프라인

*느림의 미학 (원주 단구동) | 오프라인 (12월 15일부터 구매가능)


<제주>

*어떤바람 (서귀포 안덕 사계리) | 오프라인


<이동서점>

*북다마스 | 온라인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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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고 서점 추후 업데이트 예정


※ <랩터스> 중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부분을 저자 낭독 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해준 목소리로 생생하게 듣는 랩터스 우승의 순간! 아래 링크로 들어가 확인해보세요.


[낭독] 저자 해준 목소리로 듣는 《랩터스》-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https://youtu.be/BjBx-gl2qZQ



<랩터스> 간기면 및 '한 줄로 보는 토론토 랩터스 역사'가 담긴 뒷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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