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팀만 15년 응원한 팬의 이야기,《랩터스》(해준, 가익가)
토론토 랩터스. 세계 최고 농구 리그 NBA의 30개 팀 중 유일한 캐나다 연고 팀. 나는 토론토 랩터스 팬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가 있었거나 토론토에 살다가 팬이 되지는 않았다. 2004년 캐나다 여행 중에 TV로 농구를 보다가 랩터스 중계 캐스터 목소리에 반했다. 그때부터 랩터스를 응원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랩터스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다고 해도 대부분 “하필이면 랩터스?”라는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빈스 카터 같은 슈퍼스타가 활약한 시절을 제외하고 세상은 랩터스에 무관심했다. 심지어 캐나다에서도 아이스하키에 밀려 농구 팬의 입에만 오르내릴 뿐이었다. 요즘 NBA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랩터스가 최근 5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강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5년 창단 후 첫 10년 동안 세 번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는 데 그쳤을 정도로, 랩터스는 약팀 중에서도 약팀이었다.
20대 초반에 만난 랩터스는 칭찬보다 조롱을 받는 팀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타인과 세상에 끌려다녔다. 그래서인지 어설퍼 보이는 랩터스에 동질감을 느꼈다. 몇 년 후 랩터스가 패배보다 승리가 많을 때 나는 처음으로 타인과 눈을 제대로 맞추었고 우울증에서 벗어났다. 두 시즌 만에 랩터스가 다시 암흑기를 맞이할 즈음 나는 취업에 성공해 평범한 회사원을 꿈꾸었지만,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랩터스가 조금씩 일어날 때 나는 프리랜서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랩터스의 흥망성쇠에 내 삶을 맞추어갔다.
이제 랩터스가 정규시즌에 강하지만 큰 경기에 약하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버저비터로 무너지는 모습에 원하는 일이 있어도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나를 비추었다.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속한 팀을 이기려고 어떤 방법을 써보아도 소용이 없는 랩터스처럼, 내가 작가가 되기 위해 무엇을 쓴들 세상에 글을 내놓지 못하리라 단정했다. 랩터스도 나도 자신을 믿지 않았다.
2018-19시즌을 앞두고 랩터스는 수년간 팀의 기반을 세워놓은 드웨인 케이시 감독을 경질하고 랩터스에서만 10년을 뛴 더마 드로잔을 내보내는 강수를 두었다. 그래봤자 뒷심이 부족한 이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규시즌에서 랩터스는 승패에 연연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전력을 다져나갔고, 세 번의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거쳐 사상 처음으로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그리고 파이널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4승 2패로 꺾고 NBA 챔피언이 되었다.
2019년 6월 랩터스가 우승하기까지 나에게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긍정적으로 살자고 외칠수록 불행하던 20대에도,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 급급하던 30대에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했고 무엇이든 해보기 전에 실패하리라 여겼다. 쫓겨나듯 직장을 떠날 때 나를 둘러싼 가면이 벗겨지면서 그동안 회피해 온 불안, 고통, 슬픔, 분노가 몰려왔고 프리랜서가 되면서 겪은 경제적 어려움에 자존감은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그때 마주한 비루한 일상을 견디고 맨얼굴의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면서 삶을 주도하는 힘이 생겼다. 그런데도 삶을 바꿀만한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는 의구심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매년 실패하는 랩터스에 이를 합리화했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우승의 순간을 선사하면서 랩터스는 나에게 두려움에서 빠져나오라고 했다. 직접 실패해보고 의심에 맞서보라고 했다. 그때부터 랩터스를 처음 만난 20대 초반과 30대 후반의 지금을 연결했다. 다행히 20대 흔적이 담긴 싸이월드가 살아있고 프리랜서로 겪은 일상에의 투쟁이 담긴 수천 개 메모가 남았다. 그 기억의 파편과 15년 토론토 랩터스 응원 이야기가 콜라주처럼 엮여 《랩터스》는 탄생했다.
경기를 분석하거나 농구 규칙을 소개하려고 이 글을 쓰지 않았다. 우승을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위로보다는 고통을, 믿음보다는 불신을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한 대상을 향한 애증을 이야기하고 싶다. 랩터스를 좋아하지만, 그것을 향한 감정은 참담함과 짠함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랩터스 팬으로 보낸 15년은 ‘자기 인식’의 과정이었고, 그동안 견딤과 인내를 배웠다. 《랩터스》는 버티는 것의 찬양이자, 끈질긴 한 스포츠 팬에게 찾아온 빛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랩터스》는 의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글이 쓸모가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칫 자아도취에 빠진 농구광이 늘어놓은 혼잣말 혹은 감정의 분출구로 글을 여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한 의심은 랩터스와 나를 평생 따라다녔다. 랩터스가 큰 경기에 약하다는 세상의 불신을 우승으로 지워냈듯이 내 귓가에 “글이 여전히 형편없네”라고 무언가가 속삭일 때마다 랩터스 경기를 보고 몇 문장이라도 쓰면서 의심과 타협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 의심 덕분에 쌓인 기억의 조각이 랩터스와 나를 연결했다고 믿는다. 세상 혹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이에게 《랩터스》는 의심이라는 놈과 터놓고 대화할 기회일 것이다.
국내외 뉴스와 농구 자료 사이트, 그리고 랩터스 관련 영상 덕분에 랩터스에 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랩터스 응원 이야기를 쓰기까지 영향을 준 모든 이에게 고맙다. 특히 책이 나오는 그날까지 묵묵히 기다려 준 부모님과 쌍둥이 동생에게 이 책을 바친다. 토론토 랩터스가 NBA 챔피언이라면, 가족은 나의 챔피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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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터스》 입고처
<서울·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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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일공칠 (동대문구) | 오프라인
* 서로의공간 (경기 구리시) | 오프라인
<부산>
*나락서점 (부산 남구) | 온라인 오프라인
*주책공사 (부산 중구) | 오프라인
<전북>
* 에이커북스토어 (전주 완산구) | 온라인 오프라인
* 조용한흥분색 (군산 미원동) | 오프라인
<전남>
* 책방심다 (순천 조곡동) | 오프라인
<대구·경북>
*고스트북스 (대구 중구) | 온라인 오프라인
*책봄 (구미 원평동) | 온라인 오프라인
<대전>
*해윰책방 (대전 서구) | 오프라인
<강원>
*깨북 (강릉 교동) |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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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어떤바람 (서귀포 안덕 사계리) | 오프라인
<이동서점>
*북다마스 | 온라인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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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터스> 중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부분을 저자 낭독 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해준 목소리로 생생하게 듣는 랩터스 우승의 순간! 아래 링크로 들어가 확인해보세요.
[낭독] 저자 해준 목소리로 듣는 《랩터스》-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