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에 새겨진 지도

희고 여린 콤플렉스가 삶의 증명이 되기까지

by 김가인 오로시

거울 속의 얼굴보다 내 손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아진 요즘이다. 습관처럼 손바닥을 펼쳐 본다. 굵어진 마디, 불규칙하게 자리 잡은 주름, 그리고 곳곳에 희미하게 남은 흉터들. 나는 이 거친 손바닥이 참 좋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손을 미워했었다.


어렸을 때 내 손가락은 유독 하얗고 길었다. 마디라곤 찾아볼 수 없이 매끈하고 얇은 손.

털털한 내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 희고 여린 손이 나는 지독한 콤플렉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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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신혼 때 손

어른들은 덕담이랍시고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손을 보니 일 안 하고 편하게 먹고 놀 팔자네."


지금 생각해보면 '먹고 노는 팔자'만큼 좋은 칭찬이 어디 있겠나 싶어 헛웃음이 나지만, 치기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 말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들렸다. 그 말은 마치 '생활력 없음', '능력 없음'이라는 낙인과도 같았다. 세상에 내던져져 무엇이든 해내고 싶었던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처럼 생긴 손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손을 참 많이도 괴롭혔다. 곱상해 보이는 것이 싫어 일부러 거친 일들을 찾아다녔다. 막노동에 가까운 육체노동도 마다하지 않았고, 손을 혹사시키는 일이라면 오기를 부려서라도 해냈다. "나도 할 수 있어. 내 손은 장식품이 아니야." 그것은 가냘픈 내 손가락이 세상에게 던지는 온몸의 시위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며, 억지로 괴롭히지 않아도 손에는 저절로 삶의 때가 묻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변곡점은 내가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였다.


아이를 안고, 밥을 짓고, 젖은 빨래를 짜고, 또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면서 손은 빠르게 본연의 빛깔을 잃어갔다. 희던 피부는 붉고 거칠어졌으며, 가늘던 관절은 단단하게 굵어졌다. 만약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내 손은 여전히 희고 힘없는 긴 손가락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내 손은 더 이상 "일 안 하게 생긴 손"이 아니다.

누가 봐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의 손"이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켜켜이 쌓인 굳은살을 볼 때마다, 나는 이것이 내 삶이 그려낸 가장 정직한 지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비틀고 괴롭혀서 만든 상처가 아니라,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며 얻어낸 훈장 같은 흔적들.




가만히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겹쳐지는 얼굴이 있다. 나의 엄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도 처녀 적엔 나와 같은 고운 손이었으리라.

우리 자매들을 키워내느라, 그 모진 세월을 맨손으로 받아내느라 마디가 굵어지고 손이 투박해지셨던 거구나. 내 손이 거칠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의 손이 왜 그리 맵고 단단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 오묘한 겹쳐짐 속에서 나는 엄마와 내가, 그리고 여자들의 삶이 핏줄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어릴 땐 왜 그 고운 손을 좀 더 아껴주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나는 지금의 투박한 내 손을 사랑하기로 했다. 이 손은 내가 열심히 살아왔고, 또 잘 살아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쓸데없는 걱정도 든다. 언젠가 더 나이 들어 이 자랑스러운 손이 무뎌지고 굳어버려서, 내가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될까 봐. 너무 먼 미래의 두려움까지 미리 끌어안게 만들 만큼,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 손을 깊이 아끼게 된 모양이다.


삶의 지도가 빽빽하게 그려진 나의 두 손바닥을 가만히 맞잡아 본다.


거칠어서 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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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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