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의 볕, 그리고 그림자의 입체감

: 빛이 선명할수록 삶은 깊어진다

by 김가인 오로시

등기부등본에는 명확히 '북향'이라 적혀 있다.

행정 서류가 정의한 내 카페의 방향은 빛이 들지 않는 쪽이다.


하지만 그 건조한 단어가 무색하게도,

겨울의 오후가 되면 이곳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쁜 볕이 들이친다.

낮은 고도로 길게 눕는 겨울의 햇살은

북향이라는 한계를 가볍게 넘어와,

공간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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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으니 으레 새로운 그림을 걸어야 마땅하겠지만,

벽에는 여전히 작년에 그린 '매화 달항아리'가 걸려 있다.

게으름이라기보다, 이 겨울 볕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을

조금 더 붙잡아두고 싶은 욕심 탓이다.(아마?)


오후 3시의 볕은 정확히

그 달항아리를 비춘다.


빛을 머금은 하얀 항아리는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올 듯 생생하고,

그 아래 놓인 테이블과 의자 뒤로는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창살의 무늬, 의자의 곡선, 테이블의 다리가 만들어내는 검은 실루엣들.


그 선명한 명암의 대비를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문득 '그림자'라는 존재의 필연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빛이 강렬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우리는 늘 빛만을 쫓으며 살지만,

정작 사물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다.


그림자가 없는 세상은 평면이다.

깊이가 없고, 앞뒤가 없으며, 굴곡이 없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늘 행복한 일만 가득하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을 행복이라 인지할 수 있을까.


불행이라 불리는 어두운 시간들이 존재하기에,

찰나의 기쁨이 그토록 눈부시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있기에 여름의 녹음이 간절해지고,

여름의 끈적이는 열기가 있기에 이 겨울의 서늘한 볕이 소중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은 양면의 날을 가지고 있다.

한쪽 면만으로는 세상을 베어낼 수도, 다듬을 수도 없다.


작업실 한구석, 볕이 든 자리에 앉아 생각한다.

이 거창해 보이는 '빛과 그림자'라는 단어들이,

실은 내 하루를 지탱하는 아주 작은 진리임을.

나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날은,

반대로 생각하면 내 삶을 비추는 빛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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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는 내 몫의 그림자를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그 어둠 덕분에 내 삶은 평면이 아니라,

비로소 깊이를 가진 입체가 되고 있으니까.


북향의 카페에 기적처럼 드는 저 볕처럼,

삶은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우리를 비추고,

또 그만큼의 깊은 그늘을 남기며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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