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의 프레임 너머, 이제야 열어보는 세상
이번 주 '기억살롱'의 주제어는 창문이다.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보다가, 문득 잊고 지냈던 대학 시절의 비릿한 현상액 냄새가 떠올랐다. 카메라 하나를 메고 캠퍼스와 거리를 부유하며, 유독 '창문'이라는 피사체에 집착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왜 하필 창문이었을까.
수많은 컷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내 망막에 선명한 잔상으로 남아있는 사진 한 장이 있다.
오래된 알루미늄 샷시.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아 뿌옇게 흐려진 유리.
그리고 그 창의 절반을 덮을 듯 무성하게 뻗어 나간 초록빛 아이비 덩굴.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그 낡은 창문 앞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췄었다.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그 풍경은 기묘하게 아름다웠다. 낡음과 생명력이 뒤엉킨 그 장면이 단순한 조형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창문>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며 떠올린 한 장면의 창문을 다시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찍은 것은 풍경이 아니라, 나의 결핍이었다는 것을.
그 시절, 20대의 나에게 창문은 세상과의 소통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한 '단절'의 벽이었다. 내가 서 있는 창문 안쪽은 너무나 힘들고 비루한 현실 세계였다. 반면, 뿌연 유리 너머로 빛살이 쏟아지는 바깥세상은 내가 닿을 수 없는 환상,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꾸만 사각의 프레임을 만들었다. 창문 시리즈뿐만 아니라, 거울을 들고 다니며 찍었던 사진들도 같은 맥락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세상은 진짜가 아닌 환상처럼 보였으니까. 나는 렌즈라는 안전한 도구 뒤에 숨어, 아름답게 재단된 바깥세상을 훔쳐보며 위안을 얻곤 했다. "저곳은 아름답구나. 이곳과는 다르게."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어린 마음이 만들어낸 슬픈 방어기제였다.
지금 와서 그때의 사진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현실이 고통스럽고 삶이 불행하다고 믿었던 그 시절의 나. 그 불안한 세계관이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 끝에 고스란히 묻어있었음을 이제는 안다.
만약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말을 건넬 수 있다면, 나는 그 어깨를 가만히 안아주며 말하고 싶다.
"네가 동경하는 저 창밖의 세상도, 결국은 또 다른 현실이야.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그 창문은 바라만 보라고 있는 액자가 아니라, 손잡이를 돌려 열고 나갈 수 있는 문이니까."
어렸을 때 형성된, 삶을 다소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나의 세계관은 아마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가끔은 창문 안쪽으로 숨고 싶어질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창문은 세상을 나누는 단절의 벽이 아니라, 안과 밖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숨구멍이라는 것을.
거울이 환상을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결국 내 뒤의 현실을 정직하게 비추듯, 창문 또한 나를 세상으로 연결하는 투명한 통로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오늘, 마음속에 굳게 닫혀있던 낡은 알루미늄 창문을 열어본다. 뿌연 먼지를 닦아내고 마주한 세상은, 환상처럼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아도 제법 살아볼 만한 온기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