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먼지가 춤추는 시간의 틈

: 슬픔도 햇살을 받으면 반짝인다는 것을 알았다

by 김가인 오로시

오후 4시. 하루 중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며 빛살이 가장 길게 눕는 시간. 공기 중에 부유하던 미세한 먼지들이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내고, 세상의 소음이 잠시 잠잠해지며 나른한 침묵이 내려앉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습관처럼 어떤 틈새로 빠져든다. 기억의 방아쇠는 낡은 궤종시계다. 규칙적으로 좌우를 오가는 시계추, 그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나지막한 그림자. 그리고 그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춤을 추듯 일렁이는 먼지들. 그 고요한 춤을 보고 있으면,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인력에 이끌려 어린 시절의 그 낯선 방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기억 속의 나는 엉엉 울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나를 친척 집에 맡겨두고 떠난 뒤, 홀로 남겨진 시간. 낯선 공기, 낯선 냄새. 어린 나에게 오후 4시는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사무치는 그리움의 이름이었다. 보고 싶고, 울고 싶고, 당장이라도 이 현실에서 벗어나 도망치고 싶었던 외로움의 절정.

울다 지쳐 탈진한 채 멍하니 고개를 들면, 아이러니하게도 눈앞의 풍경은 기이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오후의 뉘엿한 햇살이 방 안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칠이 벗겨진 오래된 가구도, 귀퉁이가 찢어진 낡은 벽지도, 얼룩덜룩한 커튼마저도... 그 시간의 빛 속에서는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반짝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 풍경이 서러웠다. 세상은, 내 눈앞의 모든 사물은 저렇게나 예쁜데. 오직 나만 그 빛을 받지 못하고 웅크린 채, 안 예쁜 그림자 속에 유배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후 4시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가장 처절하게 외로운 시간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오후 4시의 빛이 내 손등 위로 길게 떨어지면, 나는 어김없이 그때의 감각을 마주한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은 지우고 싶은 흉터가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일종의 '마법의 시간'이 되었다.

24시간 중 딱 이 시간. 잠시 멈칫하며 그 시절의 외로웠던 아이를 만나고 돌아오면,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아, 나는 그 긴 그림자를 견디고 어른이 되었구나." "그때의 슬픔도 결국은 지나갔고, 나는 지금 빛 속에 앉아 있구나."


마법의 시간이 지나고 빛이 사그라들면, 나는 언제 과거를 다녀왔냐는 듯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의 두 번째 생(生)'을 시작한다. 오전의 치열함과 오후의 나른함이 지나간 자리에, 과거를 끌어안고 조금 더 깊어진 마음으로 남은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어김없이 오후 4시는 돌아온다. 창가에 든 볕이 내 거친 손을 가만히 비춘다. 먼지가 춤을 춘다. 나는 오늘도 그 반짝이는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며, 나에게 주어진 두 번째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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