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그냥 그림만 그리면 되지, 왜 자꾸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이유였다.
작업을 시작할 때,
무언가를 분명히 기록해두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그렸는지,
왜 그렸는지
점점 흐려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던 걸까,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감정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그래서 짧은 메모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지
"오늘 그린 그림의 색이 마음에 든다"라든지,
"선이 잘 안 그어진다" 같은 사소한 기록이었다.
그런데 그 기록들이
점점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왜 하필 이 색을 골랐지?'
'이 선은 왜 이런 식으로 그었을까?'
'오늘은 왜 이 형상이 떠올랐지?'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의 감정과 기억,
내가 걸어온 삶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어느새
기록은 그림의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내가 그림을 통해 이해하고 싶었던 나 자신에 대한 탐구가 되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의 그림도 더 깊어졌다.
글은 내가 보지 못했던
내 그림의 깊은 곳을 보여주었고,
그림은 다시 글을 쓰게 했다.
그래서 그림과 글은
이제 더 이상 분리되지 않았다.
나는 이 기록들을 '작업노트'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조금 더 단단히 붙잡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의 그림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이해하고 싶었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 수 있을지
더 명확히 알고 싶었다.
이렇게 작업노트를 연재하기
시작한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둘째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좀 더 명확히 보기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처럼 창작 작업을 하는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작업노트는
완벽하지 않은 내 그림과,
정리되지 않은 내 감정,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삶의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한 장의 그림이
어쩌면 말해주지 못한 이야기를,
글을 통해서 조금 더 깊고 솔직하게 전하려고 한다.
그림만으로는 부족해서, 글이 필요했던 사람.
그것이 나이고,
이 브런치북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