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야, 누가 방귀를 뀌었어?
'부룩-!'
어느 날 밤, 침대에서 쉬고 있는데 천장에서 방귀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놀랐는데 이내 상황 파악이 되었고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자취를 시작하고 모든 것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이건 자취 생활의 문제라기보다 공동주택의 문제점들이다. 우리 대부분이 겪고 있는 문제, 적응이 될까 싶다가도 한 번씩 짜증을 유발하는 그것 말이다.
월요일에 잔금을 치르고 가전, 가구들을 받는 준비기간 끝에 그 주 일요일! 드디어 나의 아파트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일주일 동안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피곤했는지 11시에 누워 바로 잠이 들었다.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무서운 마음으로.
쿵쿵-!
밤 1시.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깼다. 약간의 진동도 느껴졌다. 윗집이었다. 아, 이게 층간 소음이라는 것이로구나! 들어온 첫날 층간 소음에 잠을 깰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뭘 하는 것인지 왔다 갔다를 거의 20분 간 반복했다. 잠들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애매하게 자다 깬 탓에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퇴근하면서 귀마개를 샀다. 그리고 혹시 내 소리도 저렇게 클까 싶어서 실내 슬리퍼를 구입하고 발걸음을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발망치' 소음만 문제가 아니었다. 침대가 옆집 벽과 붙어있는데 옆집 TV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날 새벽에는 통화하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30분 넘게 들려왔다. 귀마개도 했는데 희미하게 그러나 거슬릴 정도의 소리가 들려왔다. 또 다른 날 새벽 3시쯤 이번에는 남녀 한 쌍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조상 침대가 옆집에 붙어있어야 안방이 넓고 베란다 가는 동선도 해치지 않지만 다음날 결국 침대를 거실 쪽 벽으로 돌려놓았다. 그 후 이틀 뒤에 같은 시간대에 또다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더 크게 들렸다. 분에 찬 여자의 비명소리도 들렸다. 옆집 벽에 귀를 기울였다. 싸우는 소리는 옆집이 아니었다. 윗집 같았다.
살다 보니 별별 소리가 집으로 들어왔다. 옆집 고양이 발정 나서 우는 소리, 주인이 일어나 씻으면 쉬지 않고 짖어대는 어느 집 개소리, "하아암-" 하며 크게 하품하는 소리, 윗집 바닥에 놓인 휴대폰 진동소리나 수납장 여닫는 소리,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 정체불명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 옆집 샤워기 놓는 소리..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온갖 소리들이 들어왔다. 음악을 틀어놓아도 묻히지 않았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불분명한 소리도 있었다. 귀가 트인다는 표현을 쓰던데 점점 안 들리던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 특히 윗집 아주머니가 화장실에서 통화하는 소리는 집중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 구할 때 시간대를 다르게 몇 번 방문해서 층간 소음은 없는지 확인하라더니 정말 중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첫 자취를 시작하는 초보들이 부동산에 체크하고 싶은 부분들을 얼마나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혹은 나처럼 깨끗한 올수리 조건이나 좋은 위치에 반해서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겠다는 말부터 꺼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사람보다 집이 문제이긴 하다. 집을 어떻게 지었으면 일상 대화하는 소리도 웅얼웅얼거리며 흘러들어오느냔 말이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면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도 누가 듣고 있을지 몰라!" 대부분이 생활하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소리라서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발 뒤꿈치는 조심할 수 있잖아!
아랫집은 냄새가 문제였다. 날씨 좋은 날 환기를 시키려고 베란다를 열어놓았더니 담배냄새가 들어왔다. 담배냄새가 거실과 안방에 가득 차서 빼내는 데 한참 걸렸다. 창을 열어두지 않아도 배관을 타고 베란다로 냄새가 올라올 때도 있었다. 그 뒤로는 환기를 시킬 때 담배냄새가 나는지 확인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자 화장실에서 담배냄새가 들어왔다. 샴푸 냄새, 디퓨저 냄새와 섞여서 구역질이 났다. 아침 출근 전, 퇴근 후, 자기 전 적어도 세 번은 담배를 피우는 것 같았다. 급기야 화장실에 담배 쩌든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씻으려고 화장실에 오래 머물 때면 두통이 왔다. 비흡연자 집에서 담배냄새라니! 쩌든 냄새는 화장실을 벽과 바닥을 모두 닦아내고 캔들을 켜 두어야 겨우 없어졌다.
처음 한 달 간은 내가 정말 예민한 줄 알았다. 주택에서 살다 와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사례들을 찾아보니 내가 예민한 게 아니었다. 대체로 가해자가 오히려 적반하장이라고 했다.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충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지 알 것 같았다. 소심한 피해자들은 본인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정작 가해를 받았을 때는 스트레스받으며 참고 살고 있었다. 고무망치를 사서 천장을 때린다는 사람도 있었다. 냄새 역류 방지 환풍기 설치 후기에 다른 집 담배 냄새에 스트레스받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결국 이사 온 지 두 달 차에 윗집과 아랫집 우체통에 작은 선물과 메모를 남겼다. 윗집에는 밤에는 발소리를 조심해달라는 메모를, 아랫집에는 담배냄새가 올라와서 힘들다는 메모를 남겼다. 혼자 살아서 무섭기는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관리사무실에 알리라던데 세대수가 많지 않은 아파트라 관리사무소가 딱히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보복을 당할까봐 최대한 정중하게 쓰고 새해 인사를 덧붙였다. 다행히 보복을 당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메모를 남기길 잘했다. 적어도 내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은 초반에 알려야 한다. 참았다 터뜨리느니 일단 알리는 게 낫다.
아파트에 살아본 후 작은 소망이 생겼다. 땅을 사서 나의 집을 짓고 싶다. 아니면 오래된 주택을 사서 고쳐 쓰던지 말이다. 아아- 돈을 많이 벌어야 할 모양이다.
※ 해당 글은 매거진 '갑자기 독립을 했다'에서 '빡침 모음집'으로 이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