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해서 용 되기
돈을 빼고 생각해보면 독립 후 일상은 매우 만족스럽다. 조금 더 부지런해졌고 집안일에 대한 감각이 생겼으며 나의 취향대로 먹고, 사는 것은 나를 조금 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그러나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갑자기 보던 미드를 끊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던가 잠을 줄이고 운동을 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보던 미드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2, 3편을 연달아 보는 날도 많았고 추우니깐 운동은 하지 말자며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부모님과 살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루 이틀 열심히 살다가 게을러지기를 반복하는 생활. 환경은 바뀌었지만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2021년이 되었는데도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막연하게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더 부지런히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혹독한 추위가 지나간 어느 주말, 아침 온도가 영상이길래 오랜만에 운동부터 하려고 아침 8시 반에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주말 아침부터 운동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세상에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뭘 하고 있나 싶었다.
'이렇게 살려고 독립한 게 아닌데...'
갑자기 1년 전부터 관심 있었던 미라클 모닝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족들이랑 살면서 미라클 모닝을 못한 이유가 있다. 가족들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소리를 내어 영어 공부를 하면 누군가는 듣고 깰 것 같았다. 그렇다고 새벽에 일어나 공원으로 운동을 간다고 하면 위험하다고 말릴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젠 나 때문에 잠에서 깰 가족이 없다. 핑곗거리가 없어졌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말에 계획을 짜고 돌아오는 월요일에 5시 30분에 일어났다. 공복으로 공원에 나가서 달렸다. 느낌이 좋았다. 아침에 달린 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개운했고 몸이 가벼웠다. 생각보다 많이 피곤하지 않아서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부터 미라클 모닝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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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모닝 1일 차
5시 30분, 40분 알람. 더 잘까 하다가 40분에 일어났다. 조금 멍하게 잠에서 깨는 시간을 갖고 스트레칭을 간단하게 한 다음 6시쯤 공원에 나감. 아직 해가 짧은 편이라 너무 어두웠다. 그래도 30분 운동함. 내일부터 새벽은 다시 영하니까 집에서 아침시간을 보내야겠다.
운동 후 씻고 간단히 아침 차려먹었는데 시간이 하나도 촉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식물들을 베란다로 옮기고 물도 주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음!
일할 때 생각보다 많이 졸리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 진-짜 쉬고 싶었지만 할 일 다 하고 미드도 보고 게임도 하고 참 대견하다.
내일도 잘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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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모닝 2일 차
너무 피곤해서 6시에 일어났다. 윗집 개 짖는 소리 알람 효과 있음..
오늘은 공원 안 가고 집에서 전신 스트레칭 25분 했다. 비 오는지 몰랐는데 잘 됐음.
아침밥 해 먹고 식물들한테 물 주고 여유로운 아침:)
하기 싫어도 일단 다 끝내 놓고 놀자는 생각으로 하다 보면 할 일들을 다 끝내게 된다.
진짜 계속 이어나가자 이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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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반 기상. 아침에 영어 공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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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반 기상. 아침운동으로 스트레칭+플랭크+스쿼트
아침식사로 바질페스토 마늘빵 해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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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피곤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미드만 봤다.
아침에도 7시 30분에 일어남.
설거지하기도 싫었는데 10시에 겨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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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살자...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는 박명수의 명언이 생각난다. 정말로 피곤하다. 피로가 누적되는 것인지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몸이 무거워져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주말에는 다시 게으른 상태로 돌아가서 루틴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지금은 기상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어떨 때는 6시 반, 어떨 때는 원래대로 7시 반. 역시 사람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일찍 일어나는 피곤한 새가 꿈이다. 해야 할 집안일이 늘어난 만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만들고 싶다. 하던 영어공부, 운동을 하면서 책도 읽고 싶고 온라인 취미 클래스도 듣고 싶다. 그런 와중에 드라마나 영화도 보고 싶고 가끔 게임도 하고 싶다. 글도 꾸준히 쓰고 싶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아,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쉬고 있는 중국어도 다시 시작해야지.
자취를 시작으로 남은 30대를 알차게 보내고 싶다. 30대 후반쯤에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을 원한다. 바뀐 환경에 따라 조금씩 나를 바꿔 나가다 보면 용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