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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Feb 06. 2024

시처방_검침원_안희연

학교에서 잠이 계속 온다는 시연에

사연

학교에서 잠이 너무 와요

잠을 자도 계속 잠이 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처방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시 ‘검침원’

​​

그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왔다

그것은 너무 검고 너무 무거워 보여서

가방 속에 무엇이 담겨 있을지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미래가 담겨 있다고 해도 믿어질 것 같다

늘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때 나는 홀로 믿어지다, 라는 말에 붙들려 있었는데

믿을 수도 있었는데 왜 믿어진다고 생각했을까

어쨌든 그는 믿어질 것 같은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가스가 새는 곳은 없는지 점검하였다

창문의 역할과 환기의 중요성에 대해, 창가에 놓인 창백한 식물의 이름이 마오리 코로키아라는 것도

유난히 약한 녀석이에요 살아 있는데도 죽은 것처럼 보이죠

늘 거기 있던 창문을 처음으로 들여다보았다

앞으로의 외출은 마음에 꼭 맞는 창문을 고를 때까지 계속 될 것 같다

나는 그에게 차가운 물을 건네며

그의 가방 속에 들어가 잠드는 상상을 했다 그는 무엇을 검침하러 온 것일까 분 좋다

여름이 어떤 형태로든 나의 안부를 물을 때

조금 느슨하게 만들어보세요 손에 자꾸 힘을 주면

목을 감싸는 게 아니라 조르는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그는 거실 구석에 놓인 털실 뭉치와 뜨다 만 목도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완성을 바라는 마음이 거기 있다

너를 잃고 너를 잃고

죽지 않으려고 사다둔 것이었다

처방의 말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커다란 가방’을 ‘잠’으로 바꿔 읽어볼 생각을 하다니!!! 참으로 현명한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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