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 강사에서 전임 강사까지

아이들과 성장하다.

by 각진 동그라미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면서, 나는 들쭉날쭉한 수입에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전공을 살려 아동 미술학원에 보조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거다!' 하고 일했던 건 아니었고, 과거 대학생 시절 몇 번 경험해 본 아르바이트였기에 일은 어렵지 않게 해냈던 것 같다.


이 일을 경험해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미술학원 일반 강사도 월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보조 강사의 경우는 하루 3~4시간 정도만 일하기 때문에 월급이 더욱 작고 소중해진다. 보조 강사의 일은 어려운 게 없었지만 생계를 이어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월급이 제일 어려운 점이었다.(웃음)


또다시 '사람 x', '알바 x국', '알 x몬' 등을 수 없이 들락날락한 결과, 근무 시간도 길고 보조 강사가 아닌 전임 강사로 일할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 평소답지 않게 매우 긴장한 상태로 면접에 임했는데, 원장 선생님은 생각보다 편하게 대해 주시는 감사한 분이었다.


면접을 잘 본 덕인지(?) 나를 고용해 주셨지만 일은 정말 힘들었다. 무슨 미술 대회는 그렇게 많고, 이 동네 어린이들은 여기 미술학원으로 모이는지 원생도 많았다. 아이들 이름 외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으며 그 많은 아이들의 차량 시간도 체크해줘야 했고, 갑자기 대성통곡하는 아이라던지, 집에 가겠다며 막무가내인 아이까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나 혼자 모든 걸 해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퇴근길에는 나도 모르게 버스 안에서 훌쩍이거나 잠들기 전에는 울고 잠드는 날이 많을 정도로 버거운 일이었다. 어쩔 때는 너무 그만두고 싶다가도, 그때마다 항상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아이들의 말로는 설명 못할 순수한 에너지와 나를 웃게 만드는 귀여운 모습들이 한편으론 큰 힐링이 됐다.


아이들의 그림도 그랬다. 동그라미에 겨우 눈 코 입을 그리다가도, 몇 달 뒤에는 동그라미에 그럴싸한 눈썹과 귀를 그려 넣는 그런 작고도 큰 성장들이 나를 뿌듯하게 했으며, 날개가 달린 신호등이나 기상천외한 상상이 더해진 그림들을 볼 때면 그들만의 창의력에 나도 자극받기도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정신 연령도 비슷했는지, 장난치며 수업하는 게 너무나 재밌었다. 좀 더 유연한 대화가 통하는 초등 고학년들의 고민 상담도, 자질구레한 불량 식품이나 쪽지를 써서 전하는 고사리 손들이 좋았다.


아이들은 나를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게 해 줬다. 살아가기 팍팍한 상황 속에서도 별 일 아닌 것에 웃을 수 있는, 조금 더 유연하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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