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손님은 사연이 있다.
사연 없는 집이 없듯, 고객들도 사연 없는 고객은 없다. 특히나 영원히 피부에 남게 되는 이 작업 특성상 개개인의 사연을 담은 작업이 80% 정도, 나머지 20%는 순수한 패션 타투다. 그 80% 안에서도 떠나간 반려견과 사별의 아픔 혹은 아픔이 담긴 흉터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다.
모두가 너무나도 개인적인 이야기라 하나하나 자세히 풀어낼 순 없지만, 먼저 떠나보낸 자식이나 배우자, 암 수술 후 더 이상 케어가 어려운 흉터까지… 다양한 사연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평생 마음에 남을 한 고객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암 절제 수술 흉터의 커버업(기존 타투나 흉터 등을 덮는 작업)이나, 암 완치 이후 달라진 삶과 신념을 새기는 고객들이 꽤 많다. 그분은 후자에 해당되었다. 젊은 분이셨고, 유방암과 갑상선암을 모두 이겨낸, 너무나 밝고 유쾌한 분이셨다. ‘이 긍정적인 에너지가 병을 이겨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정말 강한 인상이 남은 고객이었다.
타투를 한 번이라도, 아니 눈썹 문신이라도 받아보신 분들은 안다. 한 번 받고 나면 대게 한 두 달 뒤에는 흐려진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리터치' 작업을 받게 된다. 그분도 리터치 겸 다른 타투도 새기고 싶다며 또 다른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그때 새겨가신 건 아주 작은 레터링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건강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행운이었다.
"사장님 있잖아요. 제가 또 암일 수도 있다네요? 아직 확정은 아니고요. 어쩌다 발견 됐는데, 이번에는 좀 위험한 암일 수도 있대요. 그래서 저 조만간 서울가요."
작업 중 멀티가 안 되는 나는, 머신을 끄고서 "네?, 예?"만 반복했다. 갑자기 들려온 말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아직 확정은 아니라는데 위로를 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는 동안 고객님은 웃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사장님도 건강검진 제때 다니시고, 어디 아프면 제깍 병원 가세요. 부모님도 제때 봐드려요. 저는 우리 엄마 생각하면 이걸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매일 고민이네요. 울 엄마 나 또 암인 거 알면 슬퍼할 텐데.."
고개님은 어디다 말할 곳이 없어 내게 하는 말이라 했다. 그냥 '건강'과 '행운'이 아니었다. 건강하길 바라며 그 진단이 오진이길. 그런 기적을 바라며 새기는 행운이었다. 한 글자 새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간청하게 됐다. 어디선가 내 간청을 듣고 이 사람의 바람이 현실이 되길.
작업이 마무리된 뒤, 멋쩍은 듯 "너무 걱정 마세요. 걱정이 병을 키운다잖아요." 하고 건넨 말에, 오히려 내 걱정을 먼저 해주시던 고객님. 손목이며 허리며 눈까지, 다 직업병 오겠다고 꼭 건강 챙기라고 따뜻하게 당부하시던 그분은, 그렇게 떠나갔다. 그분이 다녀간 뒤, 자리를 치우며 참 많이 울었다. 첫 방문 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자꾸만 맴돌았다. 얼마나 힘들게 암을 이겨내셨는지, 그 옆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쓰였다.
나는 평소처럼 작업을 마친 모든 고객에게 하듯, 애프터 케어 방법과 다음 리터치 일정에 대해 안내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다음엔 웃으면서 다시 뵐 수 있을 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채팅을 열어봤지만, 늘 같은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채팅이 불가능한 이용자입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순 없지만, 어디선가 그분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