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는 우정을 타고-
타투이스트로서 남긴 업적은 돈도 명예도 아니었다. 그나마 자랑할 만한 게 있다면, 좁디좁았던 인간관계의 확장이랄까. 실습생 시절 실전을 위해 모델을 구해왔어야 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잊힌 인연들이 하나 둘 찾아왔다. 그렇게 모인 첫 번째 인연들의 공통점은 '고등학교 동창' 타이틀.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는 시골 자율고에 예체능 특화 반이었는데 나는 입시에 미쳐있었고, 게다가 고2에 전학 온 케이스라 친구는 더더욱 없었다. 이미 같은 반 친구들은 저마다 모두 끈끈한 우정을 자랑했고, 자연스럽게 나는 소수의 밥친구 외에 '베스트 프렌드' 따위는 없었다.
하필 집도 멀었던지라 아침마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등교하던 나는 1등 내지 2등으로 늘 등교를 했더란다. 그중에 3등으로 등교하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이제와 말하기를 혼자서 내게 인사하고, 인사받기 챌린지를 하고 있었다고.(웃음)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시니컬했는지, 인사는 둘째치고 일단 남학생 자체와 대화가 어려웠다.(여고에서 1년을 지내다 왔다.) 어쨌든 그만의 챌린지에 실패했던 그는 몇 년 뒤, 타투 모델 구원자가 되어 돌아왔다. 우연히 인스타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어색한 안부를 주고받다, 마침 그의 공연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또 다른 고교 동창들을 만나게 된다.(그렇게 그들도 내 모델이 되었다.)
구원자 덕에 모델도 챙기고, 친구도 생겼다. 초창기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타투이스트인 나는 없었을 것. 피부 위에 영원한 그림을 새긴다는 건 여간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쌩초보인 나를 믿고 기꺼이 피부 한편을 내 준 그들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
또 다른 인연은, 어쩌다 비슷한 시기 20대 초반 자영업자 길에 떨어진 토털뷰티 숍을 운영자 친구. 우스갯소리로 '내 밥 줄 이어다 주는 영업 1팀 팀장'(홍보를 워낙 잘해 준 덕)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온몸에 내 작업밖에 없다. 걸어 다니는 내 포트폴리오가 되어주었다. 포트폴리오가 되더니 그 후엔 편의점 노상 술친구가 됐다. 한동안 서로를 찾으며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내 인생 최고의 주량 정점을 함께 찍어준 대단한 여자다. 그때 이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쓸쓸한 20대 중반을 재미도 없이 보냈을 것이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서로 응원만 전하는 중이다.
그 외에도 언급하기엔 너무 많은 인연이 있다. 사람에게 다가가길 낯설어하는 내게, 우정이란 무엇인지 하나의 인연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알려준 고마운 이들. 그들 덕분에 나는 지금 사람에 대한 까칠함을 지우고 둥그런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