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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키 Oct 30. 2019

포르투갈에서 아침을(3)_천천히 스며들기

리스본에서의 세 번째 날.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한다.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구글 지도를 보니 

전망대의 도시 리스본답게 

집 앞에도 전망대가 하나 있다.

오늘 거길 한 번 올라가 볼까?


아무리 봐도 

내가 묵고 있는 에어비앤비 위치는 정말 좋은 것 같다. 

관광지가 1-2km 이내로 가까우면서도

주거지역이라 동네 자체는 조용하다. 

(*가까운 메트로: Anjos)


층간 소음이 있다고 투덜거렸지만, 

매일 밤 딥슬립을 자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고.

그냥 사람 사는 소리 나서 오히려 이제 편안해지고 있다. 

창문을 닫으면 차 소리도 안 나고 엄청 고요하다.


여하튼 전망대나 올라가 보자. 


Viewpoint of Monte agudo


한 5분 정도면 가파른 길을 올라가자 

동네 주민들이 주로 오고 가는 작은 전망대가 나타났다. 

바로 앞에는 학교가 있어서 학생들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고

테주강이 보이는 멋진 전망과 노천카페가 있다.

'오.. 유레카!'


이런 곳에 이런 시크릿 전망대가 있다니, 그리고 고요하고 너무 평화롭잖아?

학교를 땡땡이치는 건지, 쉬는 시간인지.... 커플 친구들이 전망대에 걸터앉아 사랑을 나누고 있기도 하고

음악 틀어놓고 칠링 하는 힙쟁이들도 있었다.

크으

이태원 루프트 탑 전혀 부럽지 않은 근사한 노천 카페다. 

전망대를 바라볼 수 있게 쭉 의자랑 테이블을 세팅해놨다. 

여기를 보는 순간 운명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마 매일 같이 여기에 올라올 것 같은 그런 느낌. 

 

낮의 여유를 즐기는 현지인들이 몇몇 보인다.          

                          

리스본에서 모든 사람이 찾아가는 유명한 전망대들은

유명한 이유가 있다. 


탁 트여서 전망도 잘 보이고 노을도 야경도 매우 아름답기 때문

다만 그만큼 전 세계 모든 관광객들이 모여있어서, 조금 북적이기도 한다.

여유가 된다면 이런 시크릿 전망대에 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가로운 낮시간에 와서 책도 읽고 커피도 먹고 낮술도 하고. 

이런 바이브를 좋아하는 누군가는, 엄청 엄청 마음에 들어할 스팟이다. 후후.

(아마 밤에 노을이 질 때도 엄청 예쁘겠지.)           


이제 겨우 여행을 시작한 나에게, 이런 여유로운 평일의 낮시간은

매우 호화로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밤낮으로 사무실에 엉덩이 붙이고 일만 하던 나에게 이런 호화로움이. 


나도 자리를 잡고 에스프레소를 한 잔 해야겠다. 

그리고 서울에서 가져온 책을 꺼내 들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혼자 하는 여행 내내 오로지 책 만이 나의 친구가 되어 줄 것 같은 느낌으로

든든하게 5명이나 데려왔다. 

요즘 필 나이트 자서전 슈독을 계속 읽고 있는데

진짜 너무 재미있다.

나이키 창업자 일기장 훔쳐보는 것 같아서 혼자 키득키득.


옆에서 같이 잡지 읽던 언니 

여기 시원하고 너무 좋아서, 해질녘까지 계속 앉아 있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진 못했다. 


왜냐

시간이 지나니 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하'

마치 내가 쓰레기가 된 기분이랄까?


쓰레기 주위를 파리가 윙윙 거리듯이 내 몸에 자꾸 파리 여러 마리가 달라붙었다.

깨끗이 씻고 다니는데 너무 자괴감이 들었다.

나만 그런 건가 해서 옆에 언니를 유심히 관찰했다.


언니한테도 나랑 똑같이 파리가 달라붙더라.

(괜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파리 따윈 나비가 달라붙는 것처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 사람들이 비둘기를 피하지도, 꺼려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고 신기했는데 

비슷한 원리인가) 


나는 결국 윙윙 거림을 도저히 못 참겠어서, 책을 덮고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다시 올게.


아 그리고 거리를 계속 걷다 보니 느낀 것.

여기 사람들 무단횡단을 엄청 많이 한다. 신호등이 왜 있는지 모르겠을 정도.

빨간 불인데, 차가 안 오면 그냥 건넌다.

초록불 될 때까지 기다리면 내가 약간 멍청이가 된 느낌이랄까...?


근데 또 차들은 사람들을 엄청 우선시한다. 

길 건너려고 서성이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서서 사람 먼저 가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 내가 걸었던 거리에 개똥이 정말 많았다.

디스 이즈 개똥 스트릿.



Cortico & netos


책을 덮고 가보려고 킵해둔 아줄레주 타일 판매점에 왔다. 


어디에서 보기를 다른 기념품 판매점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했다.

젊은 언니가 힙합 틀어놓고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언니 쏘쿨.


예쁜 패턴이 너무 많아서 눈이 돌아갈뻔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참을 고민했다. 

깨진 아줄레주 타일도 판매한다.

1킬로에 5유로.


이것도 뭔가 잘 활용하면 예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감당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패스.

거리를 걸으면서 너무 예쁜 아줄레주로 둘러싸인 건물을 보면 

가끔 이거 떼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패턴의 아줄레주 타일을 파는 곳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가격도 4~7유로 정도로 합리적인 편이고, 다른 기프트샵보다 예쁜 패턴이 많았다. 


오늘은 전망대에서 해지는 걸 좀 보려고 한다.

컨디션은 계속 안 좋아서 쉬엄쉬엄 다니는 중이다.


좀 흐리지만

그래도 멋진 리스본 거리

지나가다 마주친 맛있어 보이는 빵집

포르투갈은 빵 종류가 엄-청 다양하거나, (내 기준) 빵이 엄-청 맛있진 않지만. 

빵이 굉장히 저렴하다. 

그리고 달콤한 패스트리, 브리오슈 종류 빵이 많다 :) 


그리고 국민간식 에그타르트 (나타)

위에 시나몬 가루 챡챡 뿌려먹으면 엄청 맛있다. 

가격도 얼마나 착한지, 하나의 1유로 정도. 

1일 1나타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도 관광지랑 가까운 거린데

저 집에 사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나 보다 ㅎㅎㅎ;


속옷까지 너무 적나라하게 널어두셨다.

TMI

                          

걸어 다니다 보니 주요 관광지들이 우리 집이랑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1km 안에 다 있었네..? 

다만 여기는 거리가 짧아도 언덕이 많기 때문에 더 멀게 느껴진다.


매일매일 짧은 등산을 한다고 치고 열심히 오르고 내리고 하고 있다.

(유럽식 보행 도로도 그렇고 언덕이 많아서, 힐을 신고 다니기는 정말 힘든 곳이다)


Miradouro da graca


여기저기를 배회하다 보니 오늘의 전망대 도착이다. 

대부분의 전망대가 가까이 붙어 있어서, 한 번에 모든 곳을 다 갈 수도 있다.

포르투갈은 걸어서 여행 다니기 정말 좋은 곳이다. 


오늘 와본 곳은 그라샤 성당 전망대.

한 5시쯤 왔는데, 벌써부터 일몰을 기다리면서 카페테리아에서 맥주랑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도 생각보다 많이 붐비지 않고 괜찮았다.


와, 이것이 리스본의 노을!


감기약을 먹고 있으면서도

평소에 먹지도 않던 

시원한 맥주가 너무 한 입 하고 싶어서


포르투갈 국민 맥주를 샀다. 

나를 위한 앙증맞은 미니 사이즈가 있어서 좋다.

슈퍼에서 오픈해달라고 애교애교.

                      


옹기종기 모여있는 포르투갈의 상징, 주황색 지붕.

진짜 친구랑 왔다면 여기에 자리 잡고 블루투스로 음악 들으면서 

와인 한 병은 뚝딱이 었을 것 같다. 


그러기에 충분한 분위기다 정말로.

안주도 필요 없을 듯?


뷰 보면서 와인 마시고 음악 듣고 그렇게 시간 보내면 되는 곳! 



일몰을 즐기는 사람들.

간단하게 커피나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노천카페가 있어서 

여유롭게 와서 천천히 식음료를 즐기면서 노을 지는 모습을 바라봐도 좋은 것 같다. 

종종 버스킹도 들을 수 있고, 적당히 선선한 가을밤을 즐기기엔 너무 로맨틱한 시간이다. 

내가 진짜 리스본에 왔구나 

뭐 그런 실감이 들었달까.                  

           

그렇게 아름다운 일몰을 구경하고 나니 

그새 밤이 되었네.


혼자 하는 여행이 외롭진 않지만.

이런 시간을 같이 누릴 사람이 없어 섭섭하다.

같이 오면 여기를 좋아할 친구들이 정말 많은데. 

괜스레 보고 싶다!


              

집에 가는 길엔 간단하게 먹을 장을 보러 왔다. 

타지에 오면 괜히 더 잘 챙겨 먹게 된다. 

                         

어제 샀던 이 오렌지+귤이 맛있어서 또 샀다.

여기는 슈퍼에서 바나나도 1개씩 바로 뜯어서 하나씩 구매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길민정 여기 왔으면 와인 1일 1병 했을 텐데.

와인이 진짜 너무 싼 거 아니야?


한국에서는 와인이 쓸데없이 비싸다 흠.

저 그린 와인 밝은 노랑이가 가볍고 참 맛있더라.



골목골목 식당에 불금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한국에서 금요일마다 회사 끝나고 친구들이랑 동료들이랑

시간 보내던 때가 생각났다.

불과 일주일 전.



그냥 그때는 그 시간이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타지에 와 보니, 뭔가 모든 것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전지적 시점이라고 해야 하나.

한 발짝 떨어져서 이 사람들의 사는 모습, 생활들을 지켜보고.

또 한국에서 내가 보냈던 시간들과 일상들과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느끼는 건, 정말 사람 사는 건 국가가 달라도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거다.

뭔가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의 나의 기반과 삶과 시간들과 내가 쌓아온 것들이 굉장히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하나. 


사실, 앞으로의 커리어와 이직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다가

꽤 막연하게 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가 들은 그런 조직문화나, 여기에서의 여유롭고 자유로운 삶의 모양을 동경했기 때문에.


그런데 또 내가 앞으로의 삶을

타지에서 적응하고 살아가고

가족들이 없는 환경에서 지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니 힘들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한다. 뭐 또 적응하고 자리 잡으면 다르겠지만.


여하튼 어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한 것


이곳에 오니,

조금 더 현실적인 감각을 찾아가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과 현재에 더 충실해서

즐겁게 살아가야겠다는, 아니 죽어가는 건가...? 

(사는 건 곧 죽어가는 거니까)

뭐 여하튼, 그런 잡다구리 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



결론은 지금

여기 오길 잘한 듯.


날씨도 진짜 환상적이고, 그냥 흘러가는 이 시간들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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