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gasaki, Japan
나가사키 우라카미 지구는 그 아래의 데지마, 신치 일대와는 결이 다른 여행 테마를 지닌다. 개항과 교역의 흔적을 따라가는 항구 쪽과 달리 피폭의 역사를 품어 전반적으로 근현대사적 성격이 짙다.
Sanno Shrine | 山王神社
“원폭에도 살아남은 토리이로 유명한 신사”
산노 신사는 폭심지에서 불과 800m 떨어진 곳에 있었음에도 한쪽 기둥만 남은 채 기묘하게 서 있는 토리이와 피폭을 견디고 되살아난 녹나무들이 함께 남아있는 장소다.
강한 열선으로 가지가 날아갔던 나무들은 다시 새싹을 틔워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살아남은 그 자체가 파괴와 회복의 시간을 동시에 말해준다.
토리이는 파괴의 순간을 그대로 붙잡아둔듯한 인상을 준다. 주변이 대부분 소실된 상황 속에서 이 토리이만이 그 당시의 물리적 충격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国立長崎原爆死没者 追悼平和祈念館 | Nagasaki National Peace Memorial Hall for the Atomic Bomb Victims
“물과 자연광을 통한 침묵과 추모의 공간”
지상과 지하의 대비를 통해 추모의 감정을 서서히 끌어내도록 설계된 평화 기념관은 얕은 물이 고인 고요한 풍경으로 열려 있다. 방문객은 수면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며 지하로 향하게 된다.
관람이 시작되는 진입로는 잔잔한 물과 나무 벽에 둘러싸인 채 완만하게 이어진다. 미묘한 굴절을 거듭하는 동선은 마치 미로처럼 외부의 시간 감각을 서서히 흐리게 한다.
아래로 내려가면 분위기는 더욱 응축된다.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이 하늘빛 유리 기둥을 따라 퍼지며 그 빛이 공간 전체를 떠받치는 듯한 장엄한 인상을 만들어 빛과 구조만으로 침묵과 사유의 감각이 완성된다.
長崎原爆資料館 | Nagasaki Atomic Bomb Museum
“나선을 따라 침묵의 공간으로”
앞선 공간들이 침묵과 추모의 분위기를 통해 과거를 조용히 돌아보게 했다면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은 나선형 구조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며 보다 직접적으로 과거와 마주하게 만드는 전시 공간이다.
관람 초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폭발 순간 멈춰 선 시계다. 원폭이 투하된 시각에 그대로 정지한 채 남아있기에 실제로 일어난 재난이었음을 단번에 환기시킨다.
이어지는 전시에는 피폭으로 파괴된 건물의 잔해와 일상용품이 놓여있어 폭발이 도시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히로시마 원폭 돔 모형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韓国人原爆犠牲者慰霊碑 | Nagasaki Memorial to Korean Victims of the Atomic Bomb
“약 1만 명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희생자들의 위령비”
원폭 자료관에서는 조선인 희생자에 대한 내용이 한편에서나마 다루어지긴 했지만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꼭 들러야만 했던 곳이 바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다.
약 1만 명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친구의 제안으로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를 구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없어 목례를 올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부디 편히 쉬시길
爆心地公園 | Hypocenter Park
“폭심지에 조성된 공원”
위령비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폭심지 공원에 도착한다. 이 공원은 팻맨이 공중에서 폭발한 지점 바로 아래, 폭심지 위에 조성된 공간이다.
공원 한가운데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정확히 이 지점이 원폭이 떨어진 자리임을 표시한다. 평온한 공원의 풍경과 대비되며 묘하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Peace Park Nagasaki
“평화기념상이 세워져 있는 공원”
동선상 가장 마지막에 들르긴 했지만 여행 테마상으로도 자연스럽게 마지막에 들르는 걸 추천하는 나가사키 평화공원이다. 입구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원 정중앙에는 피폭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갈증을 상징하는 분수가 설치되어 있으며 분수와 평화기념상은 직선 상에 놓여있다. 분수 뒤편으로는 이나사야마 산이 펼쳐지는데 선명한 날씨 덕분에 풍경은 한층 평화롭게 다가왔다.
분수와 기념상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참혹한 사건을 기억하면서도 동시에 평화와 회복의 의미를 조용히 전한다. 특히 하늘을 가리키는 기념상의 오른손은 원폭의 경고, 옆을 가리키는 왼손은 평화를 향한 기도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