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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먹는 여우 Aug 16. 2024

신들은 죽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죽임 당하지 않을 것이다> -by 켄 리우-

죽은 사람의 기억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영원한 이별이 되지 않았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원더랜드>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삶과 죽음의 의미, 상실의 극복, 영원한 삶의 가능성, 현실과 허구의 간극, 과학기술의 발전과 변화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 등과 같이 과학적, 윤리적 화두를 던져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 통화 서비스는 “마인드 업로딩”이라고 불리는 미래 생명공학 기술을 떠올리게 한다. “마인드 업로딩”이란 인간 뇌의 업로드와 다운로드를 말하는 것으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을 디지털 데이터로 바꾸어 컴퓨터에 전송하는 기술이다. 영화 <원더랜드> 속 “마인드 업로딩”은 살아 있던 당시 그 사람의 모든 기억과 습관, 말투와 행동 등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현한 제한적인 알고리즘이라는 점에서 뇌의 시냅스 패턴을 직접 스캔하는 미래 생명공학 기술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미래 과학 기술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이라는 것은 인간 두뇌의 신경 패턴을 직접 스캔하고 암호화한 후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보존함으로써 인간과 컴퓨터를 융합하는 디지털 불로불사의 모습일 것이다.

테드 창과 함께 주목받는 SF 작가이자 환상 문학 작가인 켄 리우(Ken Liu)의 단편 소설집 <신들은 죽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포스트휴먼 3부작>에는 이러한 “마인드 업로딩”의 기술이 등장한다.


“아마 당신도 들어 봤을 텐데, 로고리즘스의 야심 찬 프로젝트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인간 두뇌의 신경 패턴을 통째로 스캔하고 암호화한 다음, 소프트웨어로 재현하는 거죠. 싱귤래리티(Singularity, 특이점) 광신자들은 그걸 ‘의식 업로딩’이라고 했어요.”  (p.62.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의식 업로딩으로 탄생한 그들은 인간도 아니고 완전한 인공지능도 아닌 존재로서 인공 지각체라 불렸으며, 천재급 인간의 인식 능력과 최첨단 컴퓨터 기능을 지님으로써 이 되었다. 1부에서는 인공 지각체들의 탄생을, 2부에서는 인공 지각체들이 벌이는 디지털 전쟁을, 3부에서는 과도기를 지난 인간과 포스트 휴먼의 공존에 대한 고민을 담아냄으로써 미래에 실현될 과학 기술과 그로 인해 변화될 사회모습을 흥미롭게 예측해 눈길을 끈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설은 인공지능회사 로고리즘스가 회사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매디 아빠의 두뇌를 스캔해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세상은 매디 아빠와 같은 인공 지각체를 창조해 내며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을 실현시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폭동, 계엄령 등으로 모든 것이 셧다운 되었고, 사이버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현실의 전쟁만큼이나 치열하고 파괴적이었다. 세상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변해갈수록 인간은 동시에 더 연약해져 갔고, 스스로 만들어낸 새로운 종을 단지 인간의 욕망에 사역하는 존재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인공 지각체들은 그들을 만들어 낸 인간들에게 길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전쟁과 혼돈이라는 과도기를 거친 후 “공존”이라는 단어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소설 속 주인공 ‘매디’와 클라우드에서 탄생한 포스트휴먼 ‘미스트’는 이러한 공존을 상징한다.


“매디는 가상현실 헤드세트를 벗었다. 디지털 세계의 현란한 색들과 비교하면 현실 세계는 어둡고 칙칙해 보였다. 매디는 수십억 개의 우글거리는 데이터 센터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더 가까워질까? 그래서 결핍이라는 제약 없이 다 함께 같은 우주를 공유할까? 아니면 서로 멀어질까? 그래서 저마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면서 무한한 공간의 왕이 되려고 할까?”  (p. 397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며 육체와 정신, 삶과 죽음,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진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인간이 꿈꿔온 삶 ‘불로불사’가 첨단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현실에서 구현된다면 우리가 맞닥뜨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의식이 업로드된 또 다른 자아는 업로드되기 이전의 나와 동일한 인간일까? 물리적인 육체는 죽어도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게 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영생일까?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덜어지게 될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슬픔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컴퓨터 속 유령일 뿐 또 다른 자아에 대한 집착일까?


우리는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인류 진화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마인드 업로딩”은 인류 진화의 여정으로 가는 첫 번째 열쇠가 될 것이고 포스트휴먼과의 공존은 그 여정의 첫 번째 관문일 것이다. 이제는 주류와 비주류라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은 무용해 보인다. 다양한 존재간의 관계 정립, 즉 존재 중심의 사고에서 관계 중심의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흥미롭게도 켄 리우의 전작 <종이 동물원>에는 인류 진화와 관련된 작가의 독특한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단편 소설들이 있다. 그중에서 단편 “파(波)”는 기계 인간을 거쳐 에너지 파장으로 진화한 인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너지의 패턴이 된 인류에게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무의미했다. 다른 이들과 합쳐지고, 뻗어 나가고, 어른거리고, 복사하며 은하의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으로 질주할 수 있다. 에너지 파장으로 진화한 인류는 블랙홀을 통해 태초의 지구로 돌아와 조그마한 생물들의 몸속에 닿아 그들의 분자를 살짝 터치하고 비틀었다. “우연에 의한 돌연변이가 진화의 원동력이 된다”는 진화론 마저 SF작가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일 뿐이다.


켄 리우의 SF소설에는 인류 진화에 대한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관계 중심의 세계관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하고 있던 육체나 시공간의 의미는 무용할 수밖에 없는 듯 보인다.


과거부터 SF소설의 상상력은 미래의 과학기술로 현실화되었다. 이제 그 과학적 상상력은 윤리적인 고민이 더해져 어떤 미래 보고서 보다 미래를 예측하고 이슈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고, 기술의 주체이자 수혜자로서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SF작가의 상상력에 올라 타 미지의 세계로 무한한 가능성을 경험하는 재미야 말로 SF소설만의 매력일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과학을 빼놓을 수 없기에 SF소설은 그대로 우리의 삶의 이야기이다.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야기 같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으며 세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내가 SF소설 읽기를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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