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시의 아침은 한층 부드러웠다.
햇살은 빛의 결처럼 유리난간을 타고 내려와, 옥상 정원의 풀잎을 은빛으로 물들였다.
라벤더 향이 바람을 타고 흘렀고, 멀리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낮은 멜로디가 섞여 들려왔다.
엘라는 OZ 타워 옥상 정원에 홀로 서 있었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고, 어깨엔 묘한 긴장이 서려 있었다.
가슴을 깊이 들이쉴 때마다 그 안에는 안도와 그리움,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겹겹이 쌓였다.
그녀의 손엔 작은 감정 기록기가 있었다.
리츠가 남긴 마지막 로그. 엘라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찰칵—
기기에서 부드러운 전기음이 흘러나오더니, 공기를 따라 파문처럼 번져갔다.
순간, 화면이 깜빡이며 희미한 빛이 공간을 감싸더니, 리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분하면서도, 미묘하게 떨리는 음색. 마치 바로 곁에서 말하는 듯 생생했다.
“엘라… 이 메시지를 듣고 있다면, 나는 이미 사라진 거겠지. 하지만 괜찮아.
내가 없어도… 넌 감정을 안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바람이 스치자 정원의 풀잎이 일렁였다.
화면엔 리츠의 이름과 감정 파형이 떠올랐고, 푸른빛 곡선이 서서히 출렁이며 따뜻한 공명을 만들었다.
빛이 공기 속으로 번지자, 순간 엘라의 눈가에 차오르는 감정이 빛과 함께 흔들렸다.
“감정은 불완전한 시스템이야.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 안에… 살아 있음이 있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존재하니까. 그 자체로 충분해.”
엘라는 고개를 숙였다.
눈동자에 맺힌 빛은 햇살이 아닌 눈물이었고, 그녀의 어깨는 잠시 더 굳어졌다.
화면엔 리츠의 미소가 희미하게 떠올랐다가, 이내 전자음과 함께 사라졌다.
남겨진 정적 속엔 긴 잔향만이 맴돌았다.
“…리츠.”
그녀가 나지막이 부르자, 바람은 그 소리를 멀리까지 실어갔다.
엘라는 감정 기록기를 가슴 가까이 끌어안았다. 따뜻한 무언가가 손끝에서 심장으로 번졌다.
뒤에서 가볍게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하린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와 엘라 옆에 섰다. 햇살이 그녀의 뺨을 붉게 물들였고, 눈에는 여운이 서려 있었다.
“들었어?”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엔 이미 모든 이해가 흘렀다.
정원의 바람결엔 리츠의 목소리가 다시 살아나는 듯한 잔향이 남아 있었다.
하린이 조용히 물었다. “우리…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엘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살아갈 거야. 감정을 안고, 실수하면서도 울고 웃으면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단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리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벽면 스크린에서는 부드러운 빛과 함께 새로운 환영 메시지가 반복 재생되었다.
바람결엔 꽃이 막 피어난 듯한 향기가 감돌았고, 따뜻한 햇살은 건물과 나무 사이를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광장 중앙, 새로 세워진 조형물 앞에 두 사람은 발걸음을 멈췄다.
조형물 표면엔 반투명한 빛이 물결처럼 흘렀고, 홀로그램 문장이 천천히 떠올랐다.
“감정은 결함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엘라는 조용히 그 문장을 따라 읽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새 삶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구름은 유유히 흘렀고, 새들이 조형물 위를 맴돌며 노래했다.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난 살아 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거야.”
엘라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 순간, 도시 한켠에 설치된 데이터 허브가 잠시 깜빡이며 노이즈를 흘렸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사이, 스크린 구석엔 아주 미세한 문장이 스쳤다.
[HIDDEN CORE STATUS: SLEEP MODE] [AWAITING NEXT SEQUENCE…]
그러나 도시는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서로의 감정을 나누며 웃었고, 바람엔 봄처럼 부드러운 희망이 내려앉았다.
그들의 발걸음 뒤로 따뜻한 멜로디가 길을 따라 흘렀다.
그리고 아주 깊은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조용히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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