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2주일간을 머무르며 인도네시아가 여행하기 그리 만만한 곳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머무르는 것이라면 이곳은 저렴하고 안전하다. 낮은 생활 물가와 치안은 저가 여행자들에게 꽤 큰 자유를 안겨다 준다. 단지 싸게 머무르려고 한다면 이 곳에는 1인단 5천원 내외의 숙소도 많고 국민 음식 나시 고랭은 국민 가격 12000루피아 (대략 천원) 정도면 먹을 수 있다. 한국 음식과 비슷하게 밥과 4-5가지 반찬을 넉넉히 골라 먹는 식사도 20000루피아 정도면 해결할 수 있다. 이 곳의 음식은 지금까지 다녀본 어느 나라보다 한국 음식과 비슷해서 친구가 메신저로 써 먹던 김치나 냉면 공격도 먹히지 않는다. 적도 근처라고는 하지만 우기라 그런지 기대했던 것만큼 덥지도 않다. 한국의 한여름 날씨 이상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반둥과 같은 고도가 높은 도시들에서는 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도 온화하다. 치안은 인구밀도가 높은 동남아 이슬람 국가인 만큼 꽤 안정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사실 남미에서는 환상적인 경관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지만 언제나 조금은 긴장 상태였다. 남미에서 해가 지고 움직일 때는 미리 현지 치안 상태를 체크해 두어야 했고, 서유럽의 여러 도시들은 어쩌면 남미의 도시들보다 좀 더 거친 느낌을 주기도 했고 체감상 주변 사람들의 도난 경험도 더 잦았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단지 이 곳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제한된 자원으로 특정한 기대를 가지고 이 곳에 온 욕망에 가득 찬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마 여행을 자주 하지 않았다면 단지 외국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전혀 다른 냄새, 기후, 식생은 자체로 자극적이며 한국어가 전혀 들리지 않는 환경은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휴식을 준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처리하고 있던 언어적 비언어적 신호를 처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차원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필요만을 전달하는 여행 언어는 삶 마저도 간략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여행을 많이 다니고 아름다운 곳과 다른 문화들을 접하다 보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5일간 반둥에서 머무른 후 름방이라는 곳에 왔다. 처음 름방이라는 곳의 정보들을 살펴보면 잘 다듬어진 관광지 느낌의 곳이라 호감이 가는 곳이 아니라 처음에는 반둥의 여러 곳들을 돌아보려 했었다. 반둥은 자카르타에 비해 기후가 온화했기에 자카르타의 마지막 날 보고르 따만 사파리를 오고 가며 얻은 몸살을 치료하기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캡슐 도미토리에서 수일을 아픈 L을 지켜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여행은 다시 멈춰 있었다. 다만 그 사이에 얻은 것이 있다면 테니스 코트에서 만난 han과 Irvin 이 추천 해준 커피집과 레스토랑이 무척 훌륭했다는 점이다. 저가 여행을 하다보니 괜찮은 레스토랑을 가는 일은 드물었는데 그들에게 인도네시아 커피가 너무 훌륭하다고 좋은 카페를 소개해 달라고 했을 때 말해준 곳이 두 곳이 있었다. Two hands full과 Noah’s barn. 자카르타에서 뭔가 여행이 풀리지 않았을 때 너무나 훌륭한 커피에서 여행의 재미를 느끼려 했듯, 그들이 소개해준 두 장소는 인도네시아가 퀄러티 있는 레스토랑의 양식들이 매우 훌륭하고 저렴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저가 배낭 여행을 하다보니 레스토랑을 들리는 일은 드물었는데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낸 셈이다. 인도네시아 음식들은 한국인의 입맛에 매우 친숙한데 슈퍼마켓이나 빵집과 같은 군것질거리가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곳에서 커피와 피자 파스타 등을 먹으며 인도네시아인들이 요리를 매우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재료가 풍부하지 않다 보니 중간 정도의 가격대에서 좋은 군것질거리를 찾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대만이나 태국의 경우 동네 편의점이나 빵집들의 퀄러티도 훌륭하고 가격도 싸서 돈을 쓰는 맛이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가격에 비해서는 그닥이었다. 그렇다고 익숙한 맥도날드나 KFC같은 프랜차이즈를 선택하기에도 말레이시아에 비해 현저히 가성비가 떨어졌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주류의 국가이기도 했지만 고급 브랜드 이미지가 있다보니 가격은 비싸지만 맛이 없어 분위기와 브랜드를 팔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고퀄의 현지 레스토랑을 잘 찾아보면 서브웨이보다 조금의 돈만 더 지불하면 아주 크고 훌륭한 피자나 다양한 파스타를 만날 수 있게 된다. Noah’s barn은 two hands full 과는 달리 약간 호텔 커피숍 느낌이 나는 전통적인 레스토랑이었는데 메뉴가 다양해 며칠이고 방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씩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우리의 여행도 어떻게든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L이 조금씩 회복하면서 우선은 지금 여행을 진행하며 기회를 잡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느리더라도 반둥에서 바로 름방의 여러 장소와 땅꾸반 프라우 산을 묶어 하나의 투어로 가지는 않기로 했다. 투어를 따라다니면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비싸고 자유도가 낮아 좋은 곳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다리로 이 곳에 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투어를 선택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땅꾸반 프라우를 가기 위해 가장 가까이 있는 름방지역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뭔가 이 때부터 여행에 조금씩 탄력이 붙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반둥 숙소에서 만나 드물게도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현지인 친구가 알려준 Indrive라는 앱은 고젝이나 그랩과는 달리 기사님에게 직접 현금을 주어야 했지만 다른 앱보다 훨씬 저렴했다. 낯선 앱이기도 했고 앙꼿에서 여러번 피곤한 일을 겪다 보니 직접 돈을 주는 것이 살짝 마음에 걸려서 듣고도 바로 사용해 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름방으로 향할 때 처음으로 사용해 보았는데 고젝이나 그랩보다 상당히 저렴했고 영어가 통하지 않았을 뿐 별다른 어려움을 없었다. 이후 꾸준히 사용해 본 경험으로도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서 인니인들은 시스템을 잘 따르는 것 같았다. 다만 고젝이나 그랩에 비해 영어가 통하지 않았고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상대적으로 조금 노후한 느낌이었다. 특히 오토바이의 상태가 고젝과 인드라이브의 차이가 심했다. 하지만 가격과 행선지가 시스템에 의해 정해진 만큼 영어를 반드시 써야할 일도 없고 최소한의 인니어의 의사소통은 가능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반둥에서 4-50분 정도 이동했는데 기사님은 이동내내 80-90년대 팝 음악들을 라디오를 통해 틀어 두었다. 재미난 점은 차량을 통해 이동했을 때는 주로 미국음악을 듣게 된다면 버스나 앙꼿에서는 뭔가 인니 풍의 트롯 리믹스 같은 것을 듣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그런 것은 한국도 조금 비슷하긴 하지만. 학창시절 들었던 시카고나 스팅 같은 팝들을 약간 현재형으로 듣게 되는 기분이 오묘하긴 했다. 다만 발리에서 단 한번 그랩을 이용했을 때는 그보다는 좀 더 최근의 팝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아델은 언제나 참 좋았다. 름방은 고지대 반둥에서도 좀 더 높은 곳으로 계속 이동해야 했고 깔끔하게 모든 지역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간간히 사람들이 사는 흔적과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 상점들이 불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름방에서 2일간 묵었던 Jayagiri Guesthouse는 낡았지만 깨끗했고 번역기와 서툰 인니어로 소통해야 했지만 이상하게 정감이 갔다. 우리 방은 실내, 계단으로 창문이 나 있었지만 화장실은 깨끗했고 RGB가 이상하게 셋팅 되어 있었지만 이러저러한 케이블 채널들, 물론 한국 영화 채널도 있었다. 바구니에는 웰컴 드링크와 비누 조식용 스프 과자 같은 것도 한꾸러미 준비되어 있었다. 몸도 좋아졌고 돔을 벗어나 약간의 불안 속에 개인실을 골랐는데, 낡고 기본은 하는 로컬 숙소에서 묘하게 다른 나라에서의 좋은 기억들이 몇몇 숙소와 함께 떠올랐다. 비수기 평일 비어 있는 이런 숙소에 누워 있다 보면 절로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있는거지? 하는 아스라한 기분이 든다. 순간 비현실적이라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층고가 높은 한국과는 다른 건물 양식들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건물들은 자카르타나 반둥보다는 뭔가 유명하지 않은 소도시 저가 숙소에서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조금 쉬다가 근처의 수상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여러 여행 후기나 한국의 방송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곳을 찾아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는데 유명한 관광지답지 않게 거리가 전혀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반둥보다 좀 더 거칠고 낡아 보이고 인도도 더 정비되어 있지 않아 걷기 힘들었다. 아마 지금 돌이켜 보면 름방 역시도 반둥이나 자카르타에서 차량으로 직접 이동하며 거쳐가는 곳이라서 관광지이지만 배후지역이 특별히 조성되지 않은 그런 느낌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어 거리도 조금 질척거렸다. 하지만 선선한 온도에 로컬한 느낌이 한껏 들어 나쁘지 않았다. 15분쯤 걸어 도착한 수상시장의 입구는 매우 한산해 보였다. 아마 작은 배로 이동가능하게 조성된 물 위의 먹거리 시장 같은 곳이었는데 거리도 이곳도 너무 한산해 보여 운영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운영이 되고 있더라도 너무 사람이 없어서 시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도 불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할지 살짝 고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입구에서 안내를 하시는 분들은 열려 있다고 했고 사람들도 있다면서 외국인과 번갈아가며 어렵게 소통을 해낸 그들은 이야기를 마치고 해냈다는 듯이 즐겁게 웃었다.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니 수상시장의 입구가 나왔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입구의 실내 공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거나 비를 피해 있었다. 우리가 끊고 들어간 티켓에는 음료 한잔이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었는지 그 음료를 받으며 비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 곳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건물 바로 밖 처마 밑에 앉아 분위기를 살폈다. 그런데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floating market lembang 이라는 동그란 수상시장의 로고가 박혀있는(이 곳에서는 루삐아를 이 모양의 돈으로 바꿔 구매를 해야 한다. 하지만 루삐아로 구매할 수 있는 가게도 있었다) 사진 포인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조용한 인니인들이지만 비가 오는데 놀고 있어서 그런지 좀 더 활기차고 목소리가 컸다. 수학여행 비슷하게 단체로 온 학생들도 많아 꽤 시끌 벅적했다. L은 우리도 입장권으로 커피를 한잔 마시자고 했고, 오랫동안 비를 피해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수상 시장의 내부도 넓고 예상보다 훨씬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는 인공 호수의 느낌이었고,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kpop에 박물관에서 보았던 인도네시아 식의 전통 건물과 한중일 양식이 짬뽕 된 듯한 한 중 일의 정원이 깔끔하게 이어져 있는 것도 무척 쾌적하고 재미있었다.
다음 날은 드디어 땅꾸반 쁘라우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새벽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설치고 말았다. 아마 일출을 보기 위해 출발하면서 시끌벅적 했던 것 같다. 우리는 덕분에 잠을 설치고 9시가 지나 느지막하게 일어나면서 떠나고 없는 그들을 원망했다. 불확실성이 있는 여행지를 갈 때에는 퇴각계획이 중요한데 정보가 완벽하지 않을 때는 우선 일찍 출발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반둥이나 자카르타가 아니었기에 숙소에서 팔고 있는 조식을 느지막히 먹었다. 안타깝게도 숙소 자체에서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사서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시고랭이 맛 없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맛이 없었다. 꽤 늦은 시간에 출발했지만 그래도 가까웠고 우리는 이후 다른 일정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여유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다만 현금이 떨어졌기 때문에 근처의 atm에서 돈을 뽑았고 인드라이브에서 차를 불러 땅꾸반으로 향했다. 반둥에서 보았던 가격보다는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세부적인 일정은 불확실했다. 이 차가 과연 땅꾸반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인지? 정상까지 올라간다면 기사님의 입장료는 우리가 내어야 하는 것인지? 무엇보다 돌아올 때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의 불확실성이 남았다. 다행히 우리를 태우고 가신 기사님은 조용하고 깔끔하신 분이었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낼 때 우리만 돈을 내면 되었고 간단한 몇 가지 안내도 해 주셨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이었다. 요금을 지불하고 정상에 오르자 기사님은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냐고 물었다. 솔직히 조금 고민이 되기도 했다. 기다려 주신다면, 물론 좀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겠지만, 퇴각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질 것 같았지만 마음대로 머무르고 싶을 때 더 머무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살짝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우리는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돌아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깔끔하게 우리를 놓아 주며 밝은 미소로 인사를 보냈다. 끈이 떨어진 연이 되었고 잠시 살짝 불안했지만 홀가분했다. 아마 자유의 느낌이 아니었을까? 아직은 오전이었고 날은 낯설 정도로 화창했다.
단 몇 걸음만 걸으니 분화구를 볼 수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은 아닌가 염려는 했지만 일출에 집착하지 않은 관광객들이 옹기종기 분화구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처음 보는 활화산이었다. 땅꾸반 쁘라우는 상당한 규모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었고 저 멀리 몇몇 부분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이후의 이젠과 비교해 보면 분화구에 물이 고여있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처음 본 활화산이었고 날씨도 좋아 상당히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 저곳 좋은 곳을 많이 본 입장에서는 예상대로 훌륭하고 신기하긴 했지만 압도적으로 아름답거나 놀라운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일출관광으로 붐빌 때가 아닌 한적한 시간에 와서 더 평화롭게 느껴지기는 했다. 들어가자마자 몇몇 사람들이 포토 스팟에 대기하고 있었고 사진을 찍어주는 가이드들도 있었다. 우리도 그 곳에서 풍경을 보다 사진을 찍기도 했다. 땅꾸반이 좋은 점은 꽤 큰 분화구 주변을 천천히 돌아가며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선 약간 오르막이었던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 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풍경이 달라져 이채로웠고 적당히 자유롭게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조화로웠다. 조금 올라가니 더 접근할 수 없었고 다시 내려와 이번에는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분화구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유명한 도시 근교 관광지라 포장도 잘 되어 있어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다만 여기에서 추가금을 내고 까와 도마스를 가느냐만 결정하면 되었다. 그런데 후기에 따르면 반드시 가이드와 동반해야 한다는 말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후기도 있었다. 그리고 요금도 후기마다 조금 달랐다. 다행히 안내센터가 있었고 내려가는 데에 대한 정액 입장료를 내면 가이드가 동반 한다고 했다. 안내를 해 주시는 분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으셨고 한국음식도 직접 만들어 드신다는 얘기도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때 앙꼿을 탈 수 있는 곳과 가격까지 정확히 알려 주셨다. 대충 어떻게든 퇴각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아 맘이 편해졌다.
우선 결정하기 전에 안내소 옆의 전망대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 곳은 분화구가 아닌 쪽의 산을 보여주었고 꽤 넓은 곳에 지붕을 둘러 둔 반쯤 실내 같은 곳이었다. 현지인들은 그 곳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아이들을 돌보고 있기도 했다. 마침 우리도 배가 고파 먹을 곳을 찾았고 그 전망대 아래층 지하에 식당들이 즐비해 있는 것을 보았다. 성수기도 아니고 시간도 늦어 한산했지만 몇몇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메뉴는 시내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메뉴들이었고 가격은 두 배쯤 했다. 그래도 싼 가격이었고 배도 고프고 따뜻한 음식도 땡겨서 국물이 있는 소또 아얌과 미고랭 하나를 시켰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우리가 앉은 긴 의자로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식탁도 아닌 긴 의자 중간에 음식을 놓고 천천히 앉아 음식을 먹었는데 여유 있고 좋은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었다면 좀 황량했을 수도 있는 풍경이었지만 적당히 현지인들이 있었고 꽤 괜찮은 풍경에서 머무르고 싶을 만큼 앉아 있는 기분이 자유로워 좋았다. 이럴 때 가이드나 기사님을 신경쓸 필요 없이 오직 지금의 마음에만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 굳이 불확실성과 불편함을 감수했던 이유였다. 음식도 관광지라 특별히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컵라면이 아닌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참 좋았다. 컵라면은 늘 사기템이기는 하지만 하여간 그랬다.
그리고 우리는 까와 도마스 분화구로 내려가기로 했다. 안내소의 직원분은 절대 팁을 주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했지만, 우리를 안내하는 연세가 지긋하신 아저씨는 처음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로 팁을 압박했다. 한국의 현대차 직원이 신발을 사줬다고 하거나 다른 친구가 구체적으로 5만 루삐아를 줬다거나 이런 저런 우리에게는 딱히 필요없지만 불쾌할 필요도 없는 여러 정보들을 적당히 한글을 섞어서 전해주었지만 주기적으로 팁을 암시하는 정보를 주입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우리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차피 출입구로 내려가야만 해서 부담이 되지도 않았다. 20분 가량 걸어 내려오니 여러 방송에서 보았던 분화구와 그 열기를 이용한 발을 담글 수 있는 작은 온천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 지형으로 가자 마자 황량하게 펼쳐진 주변지형으로 걸어 들어갔다.
딱히 그 곳에서 닭을 삶거나 계란을 구워먹을 생각은 없었고 그 과정에서 더 불쾌한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몇몇 온천 웅덩이보다 주변의 황량한 지형이 더 흥미롭기는 했다. 하지만 땅꾸반은 그렇게 지형이 조화롭지가 않아 신기하기는 했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곳은 아니었다. 안내소의 직원이 우리를 출입구 쪽으로안내하라고 말해두었고 우리는 끝까지 노골적이었던 아저씨에게 5만의 팁을 주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가이드가 필요하다 했지만 외길로 되어있고 목표지도 명확하기에 굳이 사람이 필요한 곳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외국인과 혹은 현지 관광객을 타겟으로 하는 오래된 기득권과 텃세를 제도적으로 인정해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것이 그들의 일자리와 생계이기도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하는 것이 인도네시아 전체에 이익일까 하는 생각은 자주하게 된다. 인니 관광지는 좋은 곳에서도 이런 식으로 자주 마무리 하곤 한다. 하지만 딱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정상에서 기분 좋게 즐겼기에 크게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이런 마무리는 분명 지금까지 인니 여행에서 답답했고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지만 자신에게 맞는 여행으로 만들기 위해 했던 나름의 노력들이 꽤 좋은 기분으로 이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돌아가는 길은 출입구로 내려와 지역 경계선에서 인드라이브를 불렀고 두 대 정도가 추가금을 내야 한다면서 메시지를 보내 취소했다. 하지만 아직 해가 지기에는 멀었고 돌아왔던 길을 조금 거슬러 내려가 다시 차를 불렀다. 좁고 유턴하기 힘들었던 도로에서 우리를 발견한 아저씨는 입구까지 갔다 유턴해 돌아오던 우리를 픽업했다. 인상이 강인해 보이고 무뚝뚝해 보이던 아저씨는 름방으로 돌아와 요금에 조금 더 보태드렸을 뿐인데 밝은 얼굴로 영어로 짧은 인사를 건네셨다. 아무리 물가가 낮은 동네이지만 특별히 돈 때문에 밝아지실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꽤 터프해 보이던 인상 때문이었는지 마지막 밝은 인사가 꽤 상큼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