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세상은 결과를 중요시하지만, 과정이 없는 결과는 없다.
혹시 놀라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도 '뉴스'라는 걸 본다. 인간이 호기심의 동물이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소식들을 들어야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 때 묵언수행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의 자산 증식을 위해 주식이나 코인의 상황이 어떤지도 알아두어야 한다. 흠... 사실 이 경우 알아두는 것이 큰 쓸모가 있지는 않은 것 같지만... 흠흠. 어찌 됐든 이런 다양한 이유들로 TV나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보다보면 새삼 우리 장애인들의 사회 활동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을 실감한다.
특히 지난해(2023년) 교육부 최초 시각장애인 과장님이 탄생했다는 보도는 제법 놀라운 것이었다. 이 모질고 딱딱한 공직사회에서 그 위치까지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셨을지 공감이 가기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유퀴즈'같은 토크쇼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많은 장애인들의 사회활동 사례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이런 특출 난 분들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 구청에 장애가 있는 분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만 봐도 사회 진출이 이전보다 많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인 내가 느끼기에 이 정도이니 실제 사례들을 뒤져보면 아마 예전과는 어마어마하게 달라져 있는 장애인들의 사회활동범위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변화를 느끼며 문득 우리나라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이 남성들과 비슷하게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80년대 후반 정도부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물론 90년대까지도 남아선호사상이나 사회에서 남성우월주의 등이 널리 퍼져있기는 했었으나 이 시기부터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자연스러워지고 숫자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많아졌다.
그럼에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여성에 대해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아 뉴스에 보도되고 댓글로 욕을 먹고 난리와 부르스를 추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아서 불평등한 사례는 매우 감소했고, 우리 구청 같은 경우 이젠 남성 간부들의 숫자보다 여성 간부들의 숫자가 월등한 국면에 이르렀다. 이젠 오히려 남성들이 평등하게 대우받기 위해 싸워야 할 정도로 상황이 변화된 것이다. 역시 세상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 하하하. 이런 상황들을 보면, 이제 막 늘어나기 시작한 우리들의 사회진출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어느 강의에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중간 과정을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것은 배우거나 익히거나 일을 진행할 때, 자신이 중간에 노력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오는 미숙함과 실패와 고난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남들에게 보이기도 싫어한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천재성을 보여 갑자기 '짜잔'하고 나타나는 것처럼 단숨에 완벽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
나 또한 그렇다. 특히 어렸을 때는 공부를 할 때나 취미로 악기를 배우거나 할 때, 대체 왜 만화책의 주인공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인지 몹시 투덜대고는 했던 기억이 있다. 나이를 먹고 소주보다 씁쓸한 세상의 쓴 맛을 여러 번 느끼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에 사람들이 만화나 영화를 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적어도 어떤 한 가지 방면에선 내가 천부적인 소질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하하(엇! 왠지 독자분들이 실소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은... 나의 환청이겠지?)
이처럼 개인의 영역에서도 즉각적인 업그레이드는 어렵다. 그러니 사회의 변화는 더욱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영화에서야 주인공의 활약으로 악인들은 처벌을 받고 사회는 살기 좋아지고 갑자기 모두가 행복해지고 우리나라 만만세를 외치고 끝나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성별 간의 불평등을 없애고 여성의 인권이 신장하는데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런 연유로 장애인들을 향한 올바른 평등과 배려도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 부디 장애인들이 여러 가지 활동과 권리 신장을 위해 애쓰고 계신 분들이 지금 당장 변하는 것이 없다고 낙담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분들의 노력으로 이미 변화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설치부터 여러 건물들의 경사로 조성, 보도블럭마다 잘 깔려있는 점자 블록 등등 이루어낸 공헌이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또한 직접적인 인권운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직장에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과 복지관 등에서 자립을 위해 여러 가지 교육을 받고 있는 많은 분들 모두 대단한 공헌이 있다. '집 밖'이라는 위험 천만하고 험악한 세상에서 집밖으로 나오는 일상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들도 활동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것. 그것이 보통 공헌이 아닌 것이다.
사실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배려와 존중의 사회를 무작정 기다려보자고 말하는 것 자체가 좀 어불성설인 감이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 형님이 말씀하시길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하셨다. 내가 스피노자님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저 한 문장의 여러 가지 의미 중에서 한 가지 의미는 '오늘을 충실하게 살자'가 아닐까 싶다. 가기 싫어 떠나게 된 천리길이라고 투덜거리며 어떻게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을까 궁리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릴 수 있다. 가기 싫은 천리길을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당장 한 걸음을 떼는 일이 아니려나? 그렇게 우리 모두가 한 걸음씩 움직여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 틈엔가 목적지가 보일 날이 오겠지... 그때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서로를 칭찬하고 스스로에게 감탄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