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우주의 씽크홀

by 이길용

요즘 블랙홀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뉴턴의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텅 빈 진공 같은 우주에 천체들이 떠 있고, 질량을 가진 물질들은 외계의 대상을 끌어들이는 힘을 지닌 실체라 생각했습니다. 블랙홀은 그중에서도 가장 힘이 센 친구로, 만물을 무지막지하게 끌어당기는 천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살피며 그와는 다른 지점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뉴턴과는 달리, 질량을 가진 천체가 사물을 끌어당기고 있다기보다 시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곡률에 따라 사물이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때 나는 블랙홀은 천체라기보다 '우주의 씽크홀'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물은 블랙홀이 끌어당겨서가 아니라, 시공간의 바닥이 무너져 내린 가파른 비탈길을 속절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니까요.


이 거대한 '구멍'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중세의 '에테르'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과거에는 천체가 우주를 유영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에테르'라는 매질을 가정했으나, 뉴턴이 보편 중력 이론으로 이를 퇴출해 버렸지요.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은 다시 중세의 에테르를 소환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시공간이란 결국 텅 빈 무대가 아니라, '새로운 에테르'이자 현대 양자장론이 말하는 출렁이는 '우주적 장(Universal Field)'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블랙홀은 하나의 별이 아니라, 존재의 배경이 되는 거대한 장(Field) 자체가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파열된 심연(구멍)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블랙홀을 '우주의 씽크홀'이라 유비합니다.


추가) 혹시 오해가 있을까 덧붙입니다. 여기서 말한 ‘에테르’는 하나의 비유적 용례입니다. 중세가 상정했던 것처럼, 우주를 채운 매질적 실재로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이 중력장을 가리켜 일종의 ‘새로운 에테르’라고 언급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용어상의 유비일 뿐, 중세의 개념을 그대로 복원한 것은 아닙니다.


흥미로운 점은, 데카르트가 유체적 우주를 사유했고, 뉴턴이 '보편 중력'(Law of Universal Gravitation, 왜 이를 '만유인력'이라 오역해서 우리를 햇갈리게 하는지)으로 그 틀을 전복한 이후에도, 아인슈타인에게 이르면 우주는 다시 ‘텅 빈 진공’이 아니라 시공간 구조로 채워진 세계가 되고, 현대 양자장론에서는 ‘우주적 장’이 실재의 배경으로 이해된다는 사실입니다.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우주를 단순한 빈 무대가 아니라 어떤 장(場)의 작동 공간으로 사유하려는 경향만큼은, 중세의 에테르가 맡았던 역할을 멀리서 울림처럼 이어 주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