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가짜 예배당, 가짜 주례의 진짜 결혼식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

by 기타치는 사진가

조용한 실내악이 흐르는 차분한 공간. 작지만 아주 깔끔한 예배당이다. 밝은 색으로 깨끗하게 칠해져 있고, 울퉁불퉁한 고풍스러운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유리창으로 따스한 봄 햇살이 환하게 실내를 밝히고 있다. 신랑 신부는 멋진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 입고 긴장된 표정으로 신부 앞에 서 있다. 살짝 머리가 벗겨지고, 얼굴에 홍조를 띤 외국인 신부는 서툰 일본어로 결혼식을 진행한다. 성경에 손을 얹고 백년해로를 맹세하는 신랑 신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신부의 성혼선언에 이어 축가가 이어진다. 4명의 남녀로 구성된 단출한 성가대가 제법 정돈된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른다. 구성진 화음이 분위기를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 하객 중에 따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신랑과 신부 어느 쪽도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신랑과 신부의 가족과 아주 절친한 지인들만 참석한 이 공간에 아마도 한 명쯤 기독교 신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놀랍게도 차이나 카라의 신부복을 맵시 있게 빼입고 있는 외국인 주례 신부조차 신자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신성하고 경건한 공간 자체가 예배/미사를 드리는 곳이 아니다. 교회나 성당은 더더욱 아니다. 호텔에 딸려 있는 결혼식장일 뿐이다. 이쯤 되면 멋들어지게 화음을 만들어 내던 성가대 역시 호텔 직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외국인 신부님은 아르바이트이거나 결혼식 주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가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니 어눌했던 일본어 실력이 급작스럽게 유창해진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포함한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1%도 안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내 곳곳에 교회나 성당 건물이 눈에 띈다. 대부분 결혼식장이다. 겉모습만 교회이고 성당일 뿐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가짜 신부님이 성경을 들고 축도를 하고 가짜 성가대가 찬송가로 축복을 하는 그런 결혼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기실 '가짜'라는 표현은 다분히 외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표현이다. 일본인에게 유일신의 개념은 거의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가짜'들이 가짜가 아니고 다만 '스타일'을 빌렸을 뿐이라는 것. 당장 지금 이 순간 지진으로 와르르 무너져 버릴 수도 있고, 화산이 터져 뒤덮어 버릴 수도 있는 현실에서 이 신, 저 신 가릴 겨를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느 신이 되었건 멋있어 보이고, 그럴 듯하면 그만이다. 그 신이 '나만 믿어라' 강요를 했건 말건 상관없다.


아이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우리의 삼신할머니와 비슷한 신에게 복을 기원한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요란하게 겨울을 즐기고, 교회보다 더 교회스러운 예식장에서 서품이라고는 받은 적이 없는 신부님을 모시고 결혼을 한다. 그리고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을 하고 동네 신사 뒷 뜰에 모신다. 길을 가다 신사가 보이면 일단 들어가서 100엔이든 500엔이든 동전을 던지고 손뼉을 치고 기도를 한다. 들어주면 좋고 안 들어주어도 그만이다.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를 다른 누구에게 맡길 수 없는, 지진과 화산, 쓰나미의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신은 너무나 멀리 있는 모양이다. 니 신과 내 신의 옳고 그름을 다툴 시간에 재해시 대피 요령을 점검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결혼식이 끝나면 이웃한 피로연장으로 이동한다. 먹고 마시는 파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진짜 결혼식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