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시절의 아련한 기억을 찾아
대학 시절엔 교문 앞에서 경찰이 공공연하게 가방을 뒤져대곤 했다. 호기롭게 ‘어디 소속이냐? 신분증을 보여달라.’ 따져 보기도 하지만 의미 없는 반항일 뿐. 어느 날 별생각 없이 학교를 가는데 가방 검색이다. ‘나쁜 놈들, 또 난리군.’ 생각하며 가방을 내주었는데, 잠깐 뒤적거리던 경찰이 “이건 무슨 책입니까?” 의심스러운 말투로 묻는다. 손에 들고 있는 갈색 표지에 ‘자료 모음’이라는 네 글자만 큼직하게 적혀 있는 책은 내가 봐도 수상했다. ‘이런, 큰 일이네.’ 속으로 생각했지만 태연하게 “쓰여 있잖소, 자료 모음 제본한 거라고… 전공 세미나 관련된 자료들이에요.” “전공이 뭡니까?” “경제학이요.”
사실 그 책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잘하지만 명저로 꼽히는 팸플릿들을 묶어 놓은 책이다. 중간쯤에는 '공산당 선언’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지금은 우스개로 나누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80년대 중반에는 금서가 있었다. 읽어서도 안되고 판매해서도 안 되는 그런 책들 말이다. 가지고만 있으면 소지죄, 밑줄을 그으며 읽었으면 탐독 죄, 다른 친구에게 빌려 줬으면 유포죄까지 걸리는 무시무시한 책들이다. 당연하게도 '자료 모음’ 같은 책은 금서일 수밖에 없는 책이었고 밑줄까지 열심히 그어 가며 읽었으니 소지 탐독에 해당하는 상황이었다.
책을 펼쳐 든 경찰의 눈에 띈 몇 개의 단어와 ‘경제학’이라는 전공이 그럴싸하게 맞아 들어간 모양이다. 가방에 책을 넣어 주며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입에 발린 인사를 뱉는다. “예, 수고하세요.” 마음에 없는 답례를 하고 서둘러 학교로 들어왔다. 고등학생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순진하고 어리게 생긴 외모가 한몫했다고 스스로 생각해 본다.
80년대 중반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세상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전두환의 군사 독재 정권은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무자비하게 억누르는 시기였다. 경제학은 물론이고 철학이나 사회학에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언급해서는 안 되는 이름이었다. 지금은 작고하신 정운영 선생이 강의하셨던 소련의 공산주의 경제 체제 수립 과정에 대한 수업 또한 경제사상사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포장을 했어야 할 정도였으니.
당시 대학 운동권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았고,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았지만, 금지된 영역에 대한 호기심, 극도로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반항심은 자연스레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의 이론만 잔뜩 배우는 것이 불공평해 보였고, 왠지 다들 쉬쉬하는 영역에 대해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어쩌면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는 자연스레 떠들 수 있다는 객기를 즐겼던 것일지도 모른다.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친구들에게 지고 있는 빚을 갚으려면 이렇게라도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미약한 연대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의 20대는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었다. 이후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소련이 무너지면서 냉전 체제가 끝나고,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군부독재도 끝나고, 마침 IT의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면서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은 기억의 저편, 젊은 시절의 추억 어딘가로 스크랩되어 C++,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같은 놈들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여행을 떠나기 바로 직전, 대학 친구 하나가 베를린을 여행하면서 잊고 지내던 이름들을 끄집어냈다. 포이어바흐 스트라세, 카를 마르크스 스트라세… 베를린이라 더더욱 그랬겠다 싶으면서도 혹시 프랑크푸르트에는 뭐가 없을까 찾아봤다. 적어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본거지였던 만큼 뭐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칼 마르크스 서점(KARL MARX BUCHHANDLUNG)을 가게 된 연유를 설명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다. 여행 마지막 날, 인근의 쇼핑센터를 궁금해하던 아이들을 데리고 간 김에 같은 방향인 서점으로 향했다. 8월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쌀쌀한 날씨인 데다, 이따금씩 비까지 뿌려대는 프랑크푸르트 주택가는 너무나 조용하다. 비에 젖어 차분히 가라앉은 거리, 이미 가을로 물들어 버린 갈색의 가로수 잎새들을 보면서 어젯밤의 야단법석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구글 지도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이쯤이다 싶은 곳에 맥주집이 큼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아빠, 서점 문 닫은 거 아닌 감?” 혜나가 코맹맹이 소리로 묻는다.
“그러게, 여기쯤인데 왜 안 보일까?”
“저기 책방 간판 보여요.” 혜진이가 찾았다.
맥주집과 복사집 사이, 자그마한 서점 간판이 보인다. 간판만큼이나 서점도 작다. 우리 동네 땅콩 문고 정도? 칼 마르크스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서점인데 너무나 작다. 마르크스가 독일 태생이라는 걸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작다. 날씨만큼이나 서늘하게 식어버린, 눅눅하게 젖어버린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밖에서 보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협소한 공간에 빼곡하게 책이 들어 차 있다. 낯선 세 사람의 동양인 부녀 때문에 서점 주인의 표정에 잠시 호기심이 피었지만,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바닥에 배를 깔고 책을 보고 있는 열 살 남짓 어린아이는 마르크스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당연하게도 서가의 책 대부분은 독일어로 되어 있다. 마르크스의 사진과 인형이 장식되어 있고, 서가 여기저기에 마르크스의 이름이 등장하는 걸 보니 이 곳이 마르크스 전문 서점이란 건 바로 알겠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짧은 독일어로 책 제목들을 살펴보니 짐작대로 분배, 여성, 제3세계, 이민 등 최근의 사회적 이슈들을 고루 다루고 있는 듯하다. 그림책들은 꼬마들이 앉아서 보기 편하도록 바닥에 놓여 있다. 아까 엎드려 책을 보던 녀석은 언제 일어났는지 앉아서 다른 책을 고르고 있다. 서점 뒤편 사무용으로 쓰는 듯한 책상 옆에는 택배박스들이 쌓여 있다. 깨끗한 라벨이 붙어 있는 걸 보니 온라인으로 판매가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서점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세 사람의 이방인이 자리를 차지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을뿐더러 마르크스가 어쨌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20대 여성 둘이 어울릴 만한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점에 머물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들을 뒤적거리는 동안, 30년 전의 광장 서적이나 신촌의 알 서점에서 낯선 이름의 책을 뒤적거리던 나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게 되면 이런 느낌일까? 얼치기 마르크스주의자의 짧은 성지순례는 마르크스의 생애에 관한 자그마한 소책자 한 권을 사들고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나마 독일어로 되어 있어 언제 읽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여행의 마무리]
칼 마르크스 서점을 끝으로 세 모녀의 유럽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셋이 겪은 여행 이야기는 짧지 않다.
여행을 다녀온 후 혜진이는 베를린을 향한 향수병에 시달려야 했고, 혜나는 브뤼셀에서 가져온 초콜릿으로 친구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다. 조금 무리다 싶게 운전을 하고 다녔던 나는 일주일 정도 몸살을 겪어야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20여 년 전 내 첫 해외출장이었던 뉴욕에서의 느낌이 종종 오버랩되곤 했다. 당시만 해도 뉴욕은 우리보다 저만치 앞서가 있던 미래의 도시였다. 그곳에서 겪었던 문화적, 문명적 충격은 상당히 강렬했었다. 도시를 가득 메운 고층빌딩들은 서울과는 또 다른 위압적인 모습이었고, 브로드웨이를 가득 메우고 있던 온갖 인종의 사람들은 마치 타투인 행성의 어느 도시에 떨어진 듯한 낯섦이었다.
딸내미들은 유럽에서 무엇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구글 지도에서 맛집을 검색해 찾아가는 모습이나, 겁 없이 낡은 대리석 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모습에서 두려움이나 위압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들이 커왔던 20여 년 동안 그만큼 우리는 세계 깊숙이 자리 잡아 왔던 게다. 뉴욕 한복판에서 지도를 들고 어리바리 길을 찾던 나와는 딴판인 아이들을 보면서 이 녀석들은 이미 세계를 누빌 준비가 되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그 세상 한복판으로 뛰어들 날이 멀지 않은 아이들을 응원하며 짧은 여행,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