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마지막 저녁, 프랑크푸르트

이제는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

by 기타치는 사진가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바젤을 떠났다. 히틀러가 건설한 아우토반 위에서 아스라이 저물어 가는 석양을 보며 달려 어슴프레 어둠이 내릴 무렵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출장 올 때면 늘 머물던 호텔을 예약해 두었기에 그리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바로 옆에 위치한 호텔 꼭대기 층으로 방을 받았다. 창 밖으로는 역 지붕과 프랑크푸르트 도심의 고층 건물들이 가까이 보인다. 호텔과 역 사이로는 트램이 다닌다. 나름 번잡한 거리지만 방에서는 거의 소음을 느낄 수 없다. 저녁 식사를 위해 호텔을 나섰다. 오늘 저녁은 미리 정해 둔 곳이 있다. 몇 년 전 출장 와서 들렀던 역 광장 맞은편 기네스 맥주집이다.


2010년이니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포토키나 참관을 위해 출장을 왔고, 마지막 날이었다. 함께 출장 온 사장님과 나는 저녁 식사를 하면서 얼큰하게 취할 정도로 맥주를 마신 상태였지만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출장 마지막 날이니 딱 한 잔만 더 하자.’는 공감대가 통하면서 우연히 들어간 곳이 이 집이었다. 가게는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한편에 마련된 무대에선 통기타를 든 가수 두 명이 신나게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폴 메카트니와 무척 닮았었다. 마침 무대 바로 앞자리가 비면서 우리 자리가 되었고, 가수들의 침이 튈 정도로 가까이에서 독일에서의 마지막 날을 즐기고 있었다. 노래 중간에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날이 기네스 경의 생일이었고 그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파티가 벌어지고 있던 와중이었다. 우리에게는 독일을 떠나는 환송연인 셈이다. 영국이 아닌 독일이지만 기네스 생맥주는 여전히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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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이 한참 오르니 이벤트를 시작하겠단다. 무대 앞에 나와서 ‘Happy birthday to Guiness’ 노래를 부르면 기네스 맥주잔을 준단다. 몇 팀이 나와서 즐겁게 기념품을 얻어간다. 쑥스러워하는 사장님을 꼬셔서 무대 위로 나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우린 각각 기네스 맥주잔 하나씩을 챙겨 올 수 있었다. 잠시의 부끄러움 치고는 아주 훌륭한 기념품이었다. 이후 2014년에도 이 집에서 출장의 마지막을 장식했었다.


가게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주말 저녁을 보내고 있다. 다만 다른 것은 이번엔 무척이나 배가 고픈 상태로 들어왔다는 점. 다들 익숙한 음식을 주문했다. 바비큐 립과 핫 윙, 샐러드와 감자, 그리고 기네스와 혜나를 위한 음료수. 익숙한 맛이면서도 기네스의 이런 신선함은 오랜만에 즐겨보는 맛이다. 홀은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벽 위로는 여러 대의 TV가 매달려 있고 축구를 중계하고 있지만 관심을 보이는 건 한 테이블뿐이다. 나머지는 각자의 이야기로 분주하다. 우리는 우리의 여행 이야기로 분주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또다시 여행의 마지막 밤을 이 곳에서 보낸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 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저녁을 세 번이나 먹게 되었다. 첫날 말 안 통하는 와중에 맛있게 먹었던 발칸 음식점, 중간에 벨기에와 베를린을 각각 여행하고 만나서 찾아간 정통 독일 음식점, 그리고 오늘 기네스와 함께 먹은 립과 핫 윙, 감자… 이건 어디 음식이라고 해야 할라나… 모두 특징이 뚜렷한 음식이었다.


“유럽을 다시 오는데 한 도시만 골라야 해. 어딜 갈래?” 내가 물었다.

“난 베를린.” 혜진이의 대답

“이미 간 곳인데 거길 또 가?”

“맛만 보고 왔으니 제대로 구경해야죠. 한 달쯤 있으면 딱 좋겠다.”

“혜나는?”

“음… 이번에 프랑스는 안 가 봤으니 아마도 파리?”


역시 두 녀석의 취향은 완전히 다르다. 아마도 앞으로 이 둘이 같이 유럽을 여행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 여행은 온전히 자기 취향대로 다녀야 한다. 한 도시에서 그 도시의 시민으로 살아보는 것, 두루두루 여러 도시들을 경험해 보는 것 모두 각각의 재미와 매력이 있는 여행이다. 서울에 어느 정도 살아야 서울을 다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일주일은 어림도 없을 테고, 한 달? 반년? 글쎄… 누구도 자기가 살아가는 도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도시는 그 자체로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도시에 친구가 생긴다면 그 도시와는 또 다른 인연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도시가 뉴스에 언급될 때 메일을 보내 안부를 묻기도 하고, 혹여라도 근처로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먼저 연락하게 되는 친구,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듯이 서로 친구가 된다면 서로에게 그 친구가 살고 있는 도시는 특별한 곳이 된다.


“베를린에서 머물렀던 에어비엔비 주인장 언니랑 친해졌어요. 숙소 주인 언니가 친구들 모임에 초대했는데 페북 쪽지를 확인 안 하는 바람에 못 갔어요. 대박 재미났었을 텐데… 이번 여행에서 제일 아쉬운 사건이에요.”


혜진이가 베를린을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한 듯하다. 이 녀석은 2박 3일의 짧은 기간 동안 친구를 만들었다. 하긴 에어비엔비의 특징이 이런 점이다. 호텔은 카운터 너머로 키를 전달받으면 끝이다. 기껏해야 아침 식사 장소와 시간에 대한 안내가 추가될 뿐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모든 것이 자명하다. 키를 열고 들어가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자리한다. 철저하게 상업적인 공간이고 돈 값만큼 제공되는 서비스에 서로 별다른 불만 없다. 반면 우리가 머물렀던 에어비엔비는 그 도시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의 일상이다. 주인의 삶의 공간에 잠시 들어가 머물고 나온다. 그러다 보니 주인도 자신의 일상에 대해 설명할 것들이 있고, 객도 그들의 일상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쓰레기는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가전제품들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주차할 때 주의할 점은 없는지… 엥겔베르크에선 메추리알까지 챙겨 먹곤 했으니…


딱히 도시를 선택할 기준이 없다면 여러 도시들을 두루 둘러보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유럽의 도시들은 서로 분명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경험하다 보면 내가 무엇에 끌리는지 좀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번에 둘러본 도시들, 브뤼셀, 브뤼허, 바젤, 프랑크푸르트 모두 제각기 분명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도시들이다. 다른 도시들은 어떨까? 혜나의 궁금증은 일리가 있다. 부디 많은 도시들을 경험하고 시야를 넓혀 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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