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법 상의 명칭이 잘못되어 있는 까닭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대학 동창이 번개를 소집했다. 장소는 을지면옥. 을지로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고, 을지면옥이 헐리니 마니 하는 소문이 돌면서 부쩍 을지면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을지면옥의 돼지편육과 냉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마침 집에서 빚은 술이 있어 조금 가지고 나갔다. 서울 시청에 근무하는 친구와 대기업에 근무하는 친구가 나왔다. 맵쌀로 밑술과 1차 덧술을 하고, 찹쌀로 2차 덧술을 한 술이다. 방식으로 따지면 삼양주인 셈이다. 주스 병에 담아온 술을 한잔씩 따르니 서로 한 마디씩 묻는다.
“이게 뭐야?”
“내가 빚은 술이야.”
“소주에 담근 거?”
“아니, 쌀에 누룩 넣고 빚은 거야.”
“이야~, 집에서 빚은 술이라니, 귀한 술이구먼. 도수는 얼마나 되니?”
“17.5도.”
“그럼 증류한 거야?”
“아니, 그냥 발효만 시켜서 거른 거야.”
“그럼 사케구나.”
갑자기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 쌀과 우리 누룩으로 빚은 술인데 사케라니.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이어온 방식으로 빚은 술인데 사케라니. 쌀로 만든 술이라 하면 사케 밖에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늘 하는 대로 대꾸를 했다.
“법적으론 약 주고, 역사적으로는 청주야.”
평소 같으면 ‘그게 무슨 말이냐?’며 이야기가 길어졌을 터인데 오늘따라 시끌벅적한 을지면옥에서 내 이야기가 제대로 들리지 않은 것 같다.
“맛있네. 사케는 좀 심심하던데, 이 술은 좀 깊은 맛이 있는 것 같은데?”
친구가 만든 술이라 하니 나쁘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테지만 역시나 술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사케와 내가 가져온 술의 차이는 어느 정도 느끼는 모양이다. 입에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술을 이야기할 때 늘 고민되는 부분이 바로 명칭이다. 주세법에 따르면 들어가는 쌀의 1% 미만으로 누룩을 사용해야 청주라고 되어 있다. 나머지 쌀로 빚어 발효시킨 술은 약주에 속한다. 내가 담근 술은 5% 정도의 누룩을 사용했으니 법적으로는 약주에 속한다.
우리 술에 관한 기록을 보면 술을 빚어 술지게미를 거른 후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위에 맑게 올라온 술을 청주라고 불렀다. 약주는 한약재를 사용하여 약용 효능을 낸 술을 의미한다. 혹은 ‘약주나 한 잔 하지시요.’에서 보듯 일반적인 주류를 통칭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결국 내가 빚은 술을 약주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따른다.
약주와 청주라는 용어가 이렇게 꼬인 데에는 일본과 얽힌 복잡하고 오랜 역사적 사연이 있다. 앞으로 조금씩 풀어나가야 할 이야기 타래 중 하나이다. 우선 간단하게 정리를 해 보면, 우리 누룩을 1%만 사용해서는 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1%라는 기준은 일본 청주의 기준이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주세법에 남아 있는 일본의 흔적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에는 백화수복과 청하 이외에는 청주라고 부를 수 있는 술이 거의 없다. 게다가 전통주 방식으로 빚는 술은 절대로 청주라고 부를 수 없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왜 일본은 1%로 술을 만드는데 우리는 안 될까? 이 역시 긴 사정이 있으니 다음으로 미뤄야 하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상이 수백 년을 갈고닦아 만들어 놓은 우리의 청주는 법적으로는 청주가 아닌 약주가 되어 버렸다. 사실 약주는 통칭이거나 다른 종류의 술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말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사정과 다르지 않다. 답답한 이야기이고, 쉽사리 풀릴 것 같지도 않다. 일단은 싸구려 주정으로 만든 소주 대신 조금 비싸더라도 제대로 증류한 증류식 소주를 마시고, 소맥으로 술자리를 시작하는 대신 우리 약주를 찾아 술자리를 시작해 보자. 우리가 맛을 들이고 찾아야 이름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 아닌가. 어미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술은 그만 마실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