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BotMaker채널을 통해 소환하는 아재들의 추억
자동차 경주는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다. 가장 유명한 F1의 경우 한 팀당 적게는 300억 원에서 많게는 2천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한 해 동안 팀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러나 F1 조차도 코로나 19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2020년 17회의 경주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무려 13회의 경주가 취소되고 그나마 벌어진 경주 역시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코로나 19와는 아무 상관없는 레이싱 게임이 있다. 엄청난 속도감으로 질주하며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뒤집어지는 경우도 다반사, 심지어 트랙을 이탈해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지기도 한다. 3DBotMaker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이루어지는 레이싱 경주를 보다 보면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기껏해야 10분을 넘지 않는 짤막한 동영상이고 한 경주가 20초를 넘지 않는다. 요즘처럼 집에 틀어박혀 시간 때우기 아주 적절하다.
이 채널에서 경주하는 자동차들은 1/64로 축소한 모형 미니카들이다. 성냥갑 자동차(matchbox car)라고도 불리는, 검지와 중지를 모아놓은 정도의 크기의 장난감 자동차들이다. 차체는 금속으로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고, 앞바퀴 건 뒷바퀴 건 가느다란 철사로 연결되어 있는, 아주 단순한 구조. 유리창도 플라스틱인지라 어지간히 힘껏 던지기 전에는 부서질 일도 없다. 스케이트 삼아 발밑에 깔고 올라서야 겨우 부서질 정도이니까.
미니카, 추억 소환 아이템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세계 순위 안에 드는 자동차 생산국이고 차급별로, 용도별로 다양한 자동차가 나오고 있지만 포니와 브리사 정도만 겨우 생산하던 70년대 초등학생 시절엔 화려한 색상과 멋진 디자인의 자동차를 손안에 넣고 구경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레이싱에 참가하는 자동차들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같은 모델이라도 연식에 따라, 튜닝에 따라, 색상에 따라 온갖 변종들이 등장한다. 무역회사 다니는 아버지를 둔 친구가 모아 놓은 미니카를 보며 침만 흘리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중년의 아재에겐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한 레이싱이다.
성냥갑만 한 미니카에 엔진이 있을 리 없다. 자체 동력이 없으니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위치에너지뿐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트랙을 만들고, 트랙의 꼭대기에서 출발한다. 중력을 에너지로 이용하는 셈이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동력은 해결되었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앞바퀴가 그냥 한가닥의 철사로 이어져 있다. 조향장치라고는 도대체 들어갈 구석이 없다. 그러다 보니 트랙의 회전 구간이 극단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원심력을 이용하여 회전을 일으키는 방법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퀴가 플라스틱이라는 점이다. 진짜 자동차처럼 고무바퀴였다면 마찰력이 심해 트랙 밖으로 튕겨 나갔을 테니 말이다.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기울어진 트랙을 따라 돌아나가다 보면 차체가 높은 미니 벤 같은 놈들은 균형을 잃고 자빠지기도 하고, 균형을 잃고 돌아버리기도 한다. 중력은 계속 작용하니 뒤로 달려 레이싱을 끝내는 경우도 부지기수.
또 한 가지 짚어볼 기술적인 사항은 바로 차동기어에 관한 부분이다. 일반 자동차는 회전할 때 좌우 바퀴의 회전수가 달라지도록 차동기어를 장착하고 있다. 차동기어가 없으면 어느 한쪽 바퀴는 심하게 미끄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미니카의 경우 차축에 바퀴가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구조적으로 차동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이 역시 미니카가 회전 구간을 그나마 부드럽게 통과할 수 있는 요인이다.
덕후 아빠의 성공 스토리
3DBotMaker 채널은 2014년 3월에 첫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아들과 함께 놀기 위해 미니카용 트랙을 구입하여 설치하는 장면부터 시작이다.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듯(https://www.3dbotmaker.com/about) 부족한 부품은 3D 프린터로 만들어 트랙을 확장해 나갔고, 아마존을 통해 판매까지 하게 된다. 재미로 시작한 게 짭짤한 비즈니스가 된 셈이다.
2014년에 시작해서 2018년에 구독자 1,000명을 돌파했다. 4년 만에 1,000명이면 그다지 잘 나가는 채널은 아니었던 듯싶다. 현재는 47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 19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생각보다 높은 퀄리티의 디오라마 위에 트랙이 마련되어 있다. 곳곳에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 인형과 소품들도 현실감을 증폭시킨다. 엔진 없이 중력으로 미끄러지는 미니카가 무슨 소리를 내겠냐만, 동영상에서는 아주 적절하게 실제 자동차 경주에서 따온 소리를 입혔다. 엔진음, 배기음, 심지어 사고 날 때의 충돌음까지. 게다가 아나운서와 해설가가 티격태격하며 중계하는 것을 듣다 보면 미니카 경주라는 사실을 잊고 몰입하게 된다. 사고라도 나면 ‘어이쿠!’ 소리가 나오니.
7년 동안 쌓인 동영상을 차근차근 돌려 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우선 작년 말에 올라온 사고 영상(https://youtu.be/zAoXEFFYyz0)으로 맛을 보기를 권한다. 평소 올라오는 영상에 비해 무척 길긴 하지만 그래 봐야 16분 33초, 영화 채널에서 ‘분노의 질주’한 편에 삽입되는 광고시간보다 짧다.
미니카 레이싱에서는 현실에서는 도대체 같이 달릴 수 없는 자동차들이 함께 달린다. 미니카의 세계에서 V8이니 배기량은 의미가 없다. 튜닝은 장식일 뿐이다. 소개되는 스펙 역시 무게가 전부이지만 갈릴레오가 실험을 통해 증명하였듯 무게 하고 낙하속도는 관련이 없다. 도대체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잘 달리고 못 달리는 놈들이 구분된다. 그래서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