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타치는 사진가 Jan 03. 2021

주성치가 북유럽으로 갔다면...

심심할 것만 같은 북유럽에서 벌어지는 상상을 뛰어넘는 레이싱

피요르드의 가파른 산길에서 레이싱이 펼쳐진다. 완전히 튜닝된 67년식 머스탱이 선두를 달리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빨강 포르셰가 뒤따르는 자동차들을 하나둘씩 앞지르더니 급기야 머스탱 마저 제치고 1등을 차지한다. 그런데...


레이싱의 결과가 신부라니... 결혼식 전날 레이싱을 하고, 레이싱에서 우승을 해야 신부를 차지할 수 있다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빨간 포르셰를 몰고 나타난 인물은 신부의 예전 여자 친구, 아니 여자 애인이다.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로 주인공 로이는 신부를 빼앗기고, 결혼을 하려면 나흘 뒤 1,500Km 떨어진 독일의 뉘르부르크링 레이싱 트랙에서 빨간 포르셰를 이겨야 한다.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만난 영화, '더 레이싱:불타는 서킷'. 제목만 보고 '분노의 질주' 아류작인 줄 알았다. 영화 시작하고 10분 만에 이 영화는 진지하게 볼 영화가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겹쳐졌다. 


느닷없이 등장한 경찰서장 아저씨의 버스 레이싱, 온갖 장치를 동원하여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대지만 차를 털리고 엔진 업그레이드에 도움을 주는 허당 독일 레이싱 건달들, 묘지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 돌아가신 할머니는 왜 이들을 따라 독일까지 가야 하는 건지... 


아무리 북유럽이라고 해도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뒤죽박죽의 슬랩스틱이 난무하고, 우연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코미디이니까... 억지스럽긴 하지만 재미있다. 몇몇 장면에서는 주성치가 겹치기도 한다. 억지스럽지만 귀여운 구석도 있다. 욕 대신 헛웃음이 나온다. 코로나 때문에 우울한 상황에서 보기엔 딱 적당한 즐거움이다. 


영화를 뜯어보면 또 다른 사실들이 보이기도 한다. 계속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며 떠돌아다니는 스웨덴 아저씨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스웨덴에 대한 인식을 묘사하는 듯하다. 무모한 주인공만큼이나 무모하게 뒤를 쫓는 독일 경찰, 느닷없이 나타나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대는 독일의 레이싱 건달들 역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일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 보인 것이겠고. 


진지함이라고는 1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보고 난 후의 여운은 제법 진하다. 코로나가 끝나고 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영화의 경로를 되짚어가고 싶다. 뉘르부르크링에서 쾰른, 함부르크를 거쳐 스웨덴의 말뫼를 지나 노르웨이의 오슬로까지. 1,500Km에 이르는 긴 여행이 될 테지만 영화의 장면 장면을 떠올리다 보면 지루하지 않을 테지.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 이 영화가 시리즈물이라는 것, 게다가 3번째 작품이라는 것. 앞의 두 작품이 궁금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