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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Jan 28. 2022

[아재 라떼 공방 #3] 맨땅에 헤딩

엑셀 없던 시절, 문과생의 스프레드 시트 분투기

"K 대리님, 이 데이터 좀 수정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왜요? 뭐가 문젠데요?"


"서비스별 이용시간이 '시간:분:초'로 되어 있는데요, 이거 가지고는 소팅도 힘들고, 분석하기가 너무 어려워서요... 초단위로 환산해서 주시면 안 될까요?"


"어... 시간이 없어서 안 되겠는걸요. 알아서 해봐요."


천리안에서 처음 맡은 업무는 메뉴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높으신 분이 '이건 여기보다 저기가 낫겠는데?' 하시거나 IP(information provider) 업체 사장님이 와서 영업 담당자와 운영 담당자를 만나고 나면 메뉴 개편 요청서가 오곤  했다. 문제가 있는지를 검토하고 관련된 작업 지시서를 만드는 게 내 일이었다. 


'메뉴 관리'라는 업무가 신입사원이 왕창 들어오면서 여유가 생겨 만들어진 업무였던지라 원칙이나 기준이 딱히 없었다. 기준을 만들어야겠다 싶어 운영부서에 서비스별 이용 시간 데이터를 요청했다. 운영팀 K 대리가 전달해 준 데이터는 서비스 이름 순으로 시간:분:초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용시간이 몇 분 몇 초, 혹은 몇 초에 불과한 서비스들이 태반이었다는 점이다.  00:28:12처럼 빈자리는 00으로 표시만 되어 있었어도 정렬이 가능했겠지만 12(분):45(초), 23(초) 이런 식으로 이용시간이 나오는 바람에 도저히 이대로는 분석이 불가능했다. 


바쁘다던 K 대리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지금 같으면야 엑셀의 함수들을 이용해서 어찌어찌해 봤겠지만 당시 사용하던 로터스 123에서는 언감생심. 결국 1,000개 정도 되는 서비스 이용시간 데이터를 손으로 입력했다. 서비스를 뒤져 가며 해당 메뉴까지 정리하고 나니 K 대리가 출근하고 있었다. 이 작업을 두 달을 하고 나서 이용시간이 대폭 증가한 서비스를 중심으로 좀 더 눈에 잘 띄는 곳으로 메뉴를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숫자들을 붙잡고 끙끙대고 있는 신입사원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옆 팀의 C 대리가 책을 한 권 던져 주고 갔다. 'DBase3'라는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이었다. 두 달 정도 야근하며 공부하고 나니 훨씬 작업이 수월해졌고, 더 이상 데이터 입력하느라 밤새는 일은 없어졌다. 


몇 달 지나 더 큰 숙제가 떨어졌다. 전체 서비스의 메뉴를 개편하라는 지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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