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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Feb 15. 2022

[아재 라떼 공방 #10] 뚜벅이 뉴요커 둘

걸어서 맨해튼 일주일

바가지 야매 택시 기사가 허츠 간판 앞에 내려주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역시 주차장엔 차가 별로 없다. 사무실로 들어갔다. 대형 트럭 렌트하는 곳이란다. 승용차는 없단다. 다른 사무실에도 연락을 해 보았지만 빌릴 수 있는 차는 없단다. 나이아가라는 개뿔… 당장 오늘 밤 잘 곳부터 구해야 한다.


“꼼짝없이 맨해튼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생겼네. 내가 있던 버지니아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인데… 뉴욕은 미국이 아니구먼.”


“호텔 찾아볼게요. 맨해튼은 확실히 구경하고 가겠군요.”


K 대리도 당황한 듯하다. 별 수 없이 근처에 보이는 호텔 로비에 들어가 노란 여행책에 나와 있는 숙소들로 전화를 걸었다. 빈 방이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전화번호부인 엘로우 페이지를 뒤져 콘퍼런스가 열리는 장소 주변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열 곳 정도 통화 끝에 방을 구했다. 콘퍼런스 장소까지는 두어 블록 떨어진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호텔이었다. 낡은 벽돌 건물로 지어진 호텔은 인도 사람이 운영하는 듯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했다. 


이틀 간의 콘퍼런스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던 K 대리와 나는 남는 시간 동안 뉴욕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911 테러로 희생된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당시에도 자살 폭탄 테러로 전망대는 폐쇄된 상태였다. 2층 관광버스를 타고 할렘 거리를 지나가 보기도 하고, 인트레피드 항공모함도 구경하고, 자유의 여신상도 둘러보며 관광객 모드로 일주일을 보냈다. 


타임 스퀘어를 지날 때마다 2층 관광버스 가이드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전광판’이라며 자랑하던 광고용 전광판들이 당시 광화문에 설치되어 있던 전광판보다 한참 작았다는 것, 신호등 따위는 개나 줘버려의 마인드로 마구 무단횡단을 일삼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빌딩들을 살짝만 벗어나도 낡고 오래된 창고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들, 센트럴 파크 벤치에서 샐러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는 뉴욕의 직장인들… 기억에 남아 있는 뉴욕의 모습들이다. 타임 스퀘어에 있는 뮤지컬 매표소에서 저렴한 표를 구해 구경한 미스 사이공도 잊을 수 없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하나도 알아먹지 못했지만…


‘세계의 수도(Capitol of the world)’라는 스스로의 표현만큼이나 뉴욕은 한 블록 건너 다양한 문화가 포진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여러 나라의 음식들을 먹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K 대리도, 나도 일주일 정도는 김치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식성이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기했던 것은 맨해튼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는 점이다. 월 스트리트, 소호 거리, 센트럴 파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 모퉁이를 돌 때마다 펼쳐지는 거리의 모습은 킹콩, 고스트 버스터스, 5번가의 폴 포이티어 같은 영화들과 겹쳐졌다. 모든 거리가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가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살면서 처음 나가 본 해외여행의 기억은 아직도 짙게 남아 있다. 어디든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거, 당시만 해도 변방의 이름 없는 나라의 수도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200년이 넘은 거대 도시 뉴욕의 모습은 또렷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맨해튼만 일주일 있었네. 지겹지 않았어?”


“전혀 아니에요. 재밌었어요. 나이아가라는 나중에 또 와서 구경 가면 되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뉴욕은 다시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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