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하나도 몰라도 재미있을 이야기
수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픈 분들이 많으시죠? 열심히 공부하려 했지만 미적분에서 멈춰버린 문과 여러분이 대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음악이나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듯, 수학자들도 숫자와 기호 사이에서 전율이 돋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합니다. 혹시 수학자들이 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요? 바로 오일러 공식입니다.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는 요한 베르누이의 제자로 수학자가 되었습니다. 13세에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명석했던 오일러는 20세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의 교수로 초빙될 만큼 뛰어난 수학자였습니다. 오일러의 손에서 태어난 수학 기호가 많습니다. 함수를 나타내는 f(x), 원주율 π, 자연상수 ℯ, 허수 단위 i, 합을 나타내는 ∑ 등이죠. 잘 알지는 못하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익숙하죠?
오일러 공식이 왜 아름다운지 이해하려면, 먼저 이 공식에 등장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 짧은 수식 안에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숫자가 모두 들어있습니다.
0: 아무것도 없음(무)을 상징하는 숫자
1: 모든 숫자의 기초가 되는 단위
π: 원의 비밀을 간직한 기하학의 정수
ℯ(자연상수): 성장을 설명하는 해석학의 주인공
i(허수): 제곱해서 -1이 되는, 상상 속의 숫자
전혀 다른 분야에서 태어난 이 다섯 개의 숫자가 하나의 수식 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딱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완벽한 시를 완성한 것과 같은 감동을 줍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를 보고 "수학에서 가장 놀라운 보석"이라고 감탄하기도 했죠.
문과생들에게 가장 낯선 기호는 아마 ℯ일 것입니다. 약 2.718... 정도의 값을 가지는 이 숫자는 수학과 과학에서 '연속적인 성장'을 상징합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복리 이자'를 떠올려 볼까요? 은행에서 100% 이자를 준다고 가정해 봅시다. 1년에 한 번 이자를 받으면 원금의 2배가 되지만, 이자를 주는 주기를 잘게 쪼개서(반기, 분기, 매일, 매초...) 원금에 계속 더해나가면 돈은 얼마나 불어날까요? 아무리 잘게 쪼개도 그 값은 무한히 커지지 않고 특정 숫자에 수렴하는데, 그 한계치가 바로 자연상수ℯ입니다.
그래서 ℯ는 인구 증가, 박테리아의 번식, 방사능 물질의 붕괴처럼 자연계에서 무언가가 스스로의 크기에 비례해 변하는 모든 순간에 등장합니다. 즉,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성장의 리듬'인 셈입니다.
오일러 공식의 진짜 마법은 직선적인 성장ℯ과 회전하는 움직임π을 연결했다는 데 있습니다. 원래 오일러 공식의 일반적인 형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공식은 놀랍게도 '지수 함수(쭉쭉 뻗어나가는 것)'를 '삼각 함수(원을 그리며 도는 것)'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문과이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림만 보자고요. 반지름이 1인 원을 놓고 위의 공식대로 x값을 바꿔주면 아래 그림같은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ℯ가 상상의 수 i와 만나면, 더 이상 커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원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하지요. 이 회전이 딱 절반만큼(π) 진행되었을 때, 그 지점의 위치가 바로 -1이 된다는 사실을 오일러 공식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성장'과 '회전'이 사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이 통찰은 현대 공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통신 신호, 블루투스, 오디오 압축 기술 등이 모두 이 '회전하는 수식'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오일러 공식 외에도 ℯ는 실생활과 맞닿은 흥미로운 사례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비서 문제(The Secretary Problem)라는 걸 살펴볼까요? 100명의 지원자 중 최고의 비서를 뽑고 싶을 때, 앞선 n명은 무조건 탈락시키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본 사람 중 최고'가 나오면 바로 뽑는 전략이 있습니다. 이때 승률을 극대화하는 지점은 전체의 약 37%(1/ℯ) 지점입니다. 인생의 배우자를 찾거나 집을 보러 다닐 때도 이 1/ℯ 법칙은 꽤 유용한 수학적 조언이 됩니다.
시험 성적이나 아이큐 분포에도 종종 사용하는 정규분포가 있습니다. 문과생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죠. 이 정규분포를 나타내는 '종 모양 곡선'의 식에도 ℯ가 들어갑니다. 우리 사회의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르는 기준점에도 이 성장의 상수가 숨어 있는 것이죠. 정규분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오일러 공식은 우리에게 세상은 언뜻 무질서하고 파편화되어 보이지만, 그 깊은 이면에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질서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수학은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과목이 아니라, 우주가 어떤 언어로 쓰였는지 읽어내는 과정입니다. 문과생이라고 해서 오일러 공식을 유도할 줄 알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공식이 얼마나 아름다운 우주의 질서를 나타내고 있는지는 문과생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