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 개발자 인생의 시작
1995년 초, 대한민국은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를 국정과제로 선포하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은 이미 흔한 일이 되었고, 방학을 이용한 배낭여행은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되었다. 신혼여행은 해외 휴양지로 가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큰 딸아이가 태어났고, 거의 매일 야근이거나 동료들과 소주를 기울이던 나 대신 아내가 거의 육아를 전담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미안하고 큰 잘못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 세대의 남녀 간 역할 분담이라는 당연하게 여겼던 시대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던 탓이겠지. 흔히 하는 개발자 농담대로 나 역시 아이가 커나가는 모습을 옆으로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았다.
데이콤은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나의 자리는 마케팅부에서 개발부로 옮겨졌다. 엑셀과 클리퍼로 '데이터 좀 만진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C와 C++가 중심인 전문 개발의 세계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시장에서는 윈도우의 보급이 늘어나고, PC통신 이용자의 숫자도 급증하기 시작했다. 14.4 Kbps 모뎀이 일반적으로 보급되고 하이텔과의 격차도 점차 줄어들면서 천리안도 조금씩 세간의 주목을 받는 서비스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천리안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가입자 증가 추세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부가통신사업본부의 인적 구성도 이전과는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입사한 이후 해마다 신입사원이 배치되면서 사무실의 분위기가 조금은 밝아졌다. 새로 들어온 후배들은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모두들 천리안을 알고 있었고, 그중에는 이미 사설 BBS를 운영하는 고수도 있을 정도였다. 이전에 행정전산망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부서장 자리도 기획이나 전략 쪽 부서 출신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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