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포토샵을 배웠다

디자이너와 코딩의 틈바구니에서

by 기타치는 사진가

천리안의 ‘인터넷 접속’은 획기적인 서비스로 이용자의 각광을 받았지만, 나는 여전히 C++의 클래스와 포인터의 개념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사무용으로 만들어진 스프레드 시트,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과 전문적으로 개발에 사용하는 프로그램 언어는 접근성 측면이나 난이도 측면에서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알아야 할 개념도 어렵고 많았다. 하긴 대학 4년 동안 공부하는 내용을 속성으로 배우는 것은 무리였다. 과연 내가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짤 수 있을까?


예제 코드를 놓고 머리를 싸매며 지내던 사이 천리안은 윈도우 기반의 전용 그래픽 프로그램, 천리안 매직콜을 준비하고 있었다. 입사한 이후 도스는 점차 윈도우에 운영체제의 자리를 내주고 있었고, 윈도우 기반의 오피스 프로그램이 점차 도스 기반의 프로그램을 밀어내고 있었다. 천리안 역시 윈도우로 시급하게 자리를 옮겨야 할 상황이었다.


나를 개발부로 불러왔던 J과장의 진두지휘 아래 이현세 화백으로부터 3가지의 초기 화면 이미지를 받아왔고, 전용 프로그램과 여기서 사용할 메뉴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기 위한 저작도구도 함께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천리안에는 ‘디자이너’라는 직군 자체가 없었다. 텍스트 기반의 PC통신 서비스에서 이미지를 쓸 일이 없었으니 디자이너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간혹 홍보에 필요한 이미지는 본사 홍보팀의 디자이너에게 부탁하는 정도였다.


천리안 매직콜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 디자이너를 채용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아무리 14.4 Kbps 모뎀이 흔해졌고, 28.8 Kbps 모뎀도 드물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JPG이미지를 전화선으로 전송하는 일은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이미지 하나 받는 데 1~2분이 걸렸다. 분당 요금을 내는 사용자한테는 그게 돈이었다. 그러니 이미지는 무조건 작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통신상의 제약에 대해 이해하는 디자이너는 없었다. 당시 포토샵을 사용하여 JPG 파일을 다루는 작업은 광고나 인쇄 분야뿐이었고, 여기서 파일 사이즈에 대한 제약은 없었다. 커다란 이미지는 하드디스크로 옮기면 되었고, 이미지를 처리하는 장비는 성능 좋은 실리콘 그래픽스나 맥킨토시 장비가 대부분이었다. 이미지의 크기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천리안 매직콜의 환경은 디자이너에게는 지옥 같은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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